잘못될 수도 있는 물건과 잘못될 가능성이 없는 물건의 주된 차이점은, 잘못될 가능성이 없는 물건이 잘못되는 경우 대개 문제를 파악하거나 수리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p. 166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5: 대체로 무해함
주위의 독촉과 압력을 받고서야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무궁무진한 입담을 풀어내던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제발 무지무지하게 재미있는 책을 번역하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응답을 받은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김선형과 SF 마니아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이 장르에 적잖이 애정을 가진 권진아 옮김
책세상, 2005


@aleph_k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사이드바에 있는 결제시스템에서 꼴티브X를 걷어버린 개념서점 알리딘 TTB를 눌렀다가 알라딘에서 새해맞이 반값 수소폭탄세일을 하는데 거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연을 쫓는 아이가 들어 있다고 배알이 꼴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펼쳐서 뒤적대다가 어익휴,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이 매끈매끈한 뒷면에 살포시 박혀 있는 어떤 이동통신기계나 그것보다 조금 얇고 싼 대신에 전화는 원칙적으로 할 수 없는 휴대용음악동영상오락기타등등감상기계가 불현듯 떠오른 건 아님.

그런데 한 가지 더!

반값세일 목록을 훑던 중- 아니 이것은!!! 하고 두 눈에 존재하지 않는 가속도가 모니터 방향으로 휙- 하고 작용하게 만든 책이 있었으니!!




표지가... 1-5권 합본과 똑같아... 꺄악! 쌩유!!! (난 합본을 안 샀으므로 ㅋ)


이게 뭐야!!! 히치하이커 시리즈 6권이라니!!!

그래서 득달같이 주문했어요. ㅋ_ㅋ

작가 사후에 다른 작가(들)가 시리즈의 바통을 넘겨받거나 여러 컨셉을 차용해서 곁가지로 나가는 경우 작품의 질이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 밀리웨이스로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사실은 잘 모름. 걍 그렇다고들 한다더라고 하더이다란 얘기. 하지만 적어도 시뮬레이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파운데이션 곁가지 3부작은 그야말로 이건 뭥미-_-;;;였음(뭐... 잉글랜드어로 된 책을 읽어서 그런 건 아님;;;))한데, (홍보야 다들 그렇게 했/하겠지만) 유족들이 심혈을 기울여 작가를 선정했고, 사전 한 번 안 찾아보고 지레짐작으로 엉뚱하게 책 제목을 붙여놓고 독자들이 오류를 지적하니까 되도 않는 어원드립을 펼치며 끝까지 난 안 뜰려뜸 ㅇㅇ 이런 번역가(관련 궁시렁이 언젠가는 올라갈 예정임 ㅎ_ㅎ)가 아니라 스스로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외에는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을 깨달은 뒤로 그나마 최대한 잘해보려고 꽤나 노력한 덕분에 엄청나게 훌륭한 책(물론 히치하이커 시리즈도 포함됨ㅎㅎㅎ)을 번역하고 있는 김선형씨가 번역을 맡았다고 하니 부담없이 바로 질렀다. ㅎㅎ
다만 희망사항이 한 가지 있다면 이번엔 (은근히 대놓고 시작 부분과 연관성을 잃지 않기 위해 대체로 무해함 166쪽 외 여러 곳에 등장하는) breath-o-smart 같은 연결합성어(?)도 건전하게 부적절한 브리드-오-스마트로 쓰지 말고 뇌가 통통 튈 정도로 깜찍한 한글로 바꿔 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 대해 대체로 완벽하게 정상적인 정보

2009/12/13 [신간] 그런데 한 가지 더 [12] by twinpix

햄버거, et al.

And Everything 2010. 1. 3. 16:04
이봐요. 20세기의 옛 지구에서, 한 패스트푸드 체인은 죽은 소고기를 기름에 튀겨 발암 물질을 더하고 석유로 만든 발포제로 포장해 9천억 개를 팔았어요. 인간은 그런 식이에요. 설명이 안 되는 동물이라고요.
p. 253

솔은 거머리와 찜질 약을 쓰던 시대 이후로 의술에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고 이제까지 생각했고, 계속 그 생각을 고수했다. 오늘날 의사들은 원심분리기에 환자를 넣고 돌리고, 인체의 자기장을 재조정하고, 환자에게 음파 폭격을 퍼부은 뒤 세포를 두들겨 패 RNA를 심문했으며, 그 후엔 자신들의 무지를 인정했지만 실제로 공공연하게 말로 인정하는 일은 없었다. 유일한 변화는 청구서 금액이 더 커졌다는 것 뿐이었다.

p. 326

 

 

히페리온 Hyperion
댄 시먼스 지음 |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 2009
사서는 여러분에게 확실한 충고를 해 줘서 시간을 절약하도록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일이 많아 바쁘거나 신경질이 많은 경우를 제외하고) 도서관의 책임자는, 특히 작은 도서관일수록, 다음의 두 가지, 즉 자신의 박식함과 기억력, 그리고 자기 도서관의 풍부함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아주 행복해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도서관이 변두리에 있고 또 찾는 사람이 없을수록, 책임자는 그 도서관이 인정받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감에 괴로워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그런 책임자를 즐겁게 해준다.
p. 81

논문 잘 쓰는 방법 Come si fa una tesi di laurea
움베르토 에코 지음 |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06



지배를 합리화할 때면 언제나 지배당하는 사람이 열등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이론이 나타났다. '노예제는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 태어난다는 자연권에 위반된다'고 쓴 바 있는 몽테스키외는 역설적으로 흑인 노예제를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옹호했다. "어느 누구도 지극히 지혜로운 존재인 신께서 영혼을, 그것도 선량한 영혼을 완전히 새까만 그들의 몸뚱아리에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이 누가 봐도 비논리적이라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실용적 언급이 잘 말해 준다. "노예가 사탕수수를 경작하지 않으면 설탕은 지나치게 비싸질 것이다."
결국 바로 이 점이 계몽주의 시대에 노예제가 번성한 사실을 잘 설명해 준다. 교역을 통해 근대적 경제 성장을 자극했던 플랜테이션 경제의 발전은 다른 사람들의 강제 노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예는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아니다' 혹은 '그들은 미개인으로, 예속화는 미개인을 문명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무시하는 것은 유럽인의 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그리고 그들의 정신적 지평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했다. 여행자의 기록과 외국의 땅과 민족에 대한 기술이 증가하고 있었는데도 인류의 다양성에 대한 유럽 일반인의 무지는 놀라울 정도였다. 한 타히티인을 파리에 데리고 온 부갱빌(1729~1811, 남태평양을 탐험한 프랑스의 항해가)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들어야 했다. "어떻게 이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프랑스어나 잉글랜드어, 에스파냐어가 사용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북아메리카에서는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가 잉글랜드어로 말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pp. 171-173

거울에 비친 유럽 Europa Ante el Espejo
조셉 폰타나 지음 | 김원중 옮김
새물결, 1999
"바이올렛을 태우고 어디로 갈 거니?"
"내일 저랑 교외로 드라이브 갈 거에요. 바이올렛은 산책하고 싶어해요. 내가 데리고 갈 거에요."
"숲이 있어요. 제퍼슨 공원이라고. 거기로 갈지 아니면 쇠고기 마을로 갈지 생각 중이에요."
"쇠고기 마을로 가야 해. 그 숲은 없어졌어."
"제퍼슨 공원이요?"
아빠가 끄덕이며, 혀로 입천장에 붙은 음식을 긁어내면서 곁눈질을 했다.
"그래. 제퍼슨 공원 맞아. 공기 공장을 짓느라 없어졌어."
"농담이시죠?"
"아니, 사실이야." 아빠가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공기는 있어야 하잖아."
"나무는 공기를 만들어요."
아빠는 바이올렛을 빤히 쳐다보고는 말했다. "그래, 물론. 하지만 나무가 얼마나 비능률적인지 알잖아. 공기 공장에 비하면 말이야."
"그래도 나무는 필요해요!"
"뭣 때문에? 자- 나무 좋지. 하지만 그건 너무 능률이 떨어져. 그러니까... 땅값이 얼마나 비싼 줄 아니?"
"나무를 베어버렸다니 믿기지가 않아요! 제퍼슨 공원을 없앴다고요? 그건 너무나 기업 위주의-"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에 짐짓 미소를 짓고 바이올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랬다.
"똑똑이, 나도 너 같았던 때가 있었다. 커서 어른이 되면 알게 돼. 청정 공기 사업이나 뭐 그런 거 말야. 그 마음을 잃지 말아라. 하지만 명심해. 그건 사람과 관련된 거야. 사람에게는 공기가 많이 필요해."
잠시 동안, 다들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다. 바이올렛은 화가 났거나 당황한 것 같았다.
pp. 142-144


피드 Feed
매튜 T. 앤더슨 지음 | 조현업 옮김
지양사, 2009



마피아와 이러쿵저러쿵 협상을 하는 동안 정부가 감수하게 된 수치스러운 굴욕, 겸손하고 정직한 공무원이 범죄조직을 위해 상근으로 일을 하도록 허용하기까지한 굴욕을 보면서 도덕적으로 말해서 정부가 밑바닥까지 다 내려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게 눈을 감은 채 현실정치라는 늪지대를 건너가다 보면, 실용주의가 지휘봉을 잡고 악보에 적힌 것을 무시한 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 보면, 불명예의 논리가 늘 어김없이 보여주듯이, 결국 밑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도 몇 걸음 더 내려가게 된다고 장담할 수 있다.
p. 77

죽음의 중지 As Intermitências da Morte
주제 사라마구 지음 | 정영목 옮김
해냄, 2009



돌아오는 길에 시부야 거리를 걸어 본다. 멍한 눈길로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패션의 거리답게 다들 화사한 차림새지만, 정말 근사한 사람은 몇몇뿐이다. 거의가 평범하고, 그중 20퍼센트 정도는 경치를 망치는 불순물이다. 단순히 아름답고 추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 존재 자체에서 풍겨나는 맛이라곤 도무지 없다. 물론 나 역시 그들 눈에는 그렇게 비치겠지.
그런데 정작 이 사람들은 뭘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세상에는 성공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뭔가를 달성하지도 못했고 남한테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보지도 못한 사람들. 타고난 재능도 없고 그렇다고 용모도 받쳐주지 않고, 특별히 뭐 하나 자랑할 거라곤 없는 사람들. 그런데도 인생은 계속되지 않은가.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살고 있을까.
여기저기서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마치 거리 전체가 억지로 즐거움을 가장한 채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pp. 314-315

라라피포 ララピポ
오쿠다 히데오 지음 | 양억관 옮김
노마드북스, 2006

"아저씨는 몇 살이야?"
"서른 살."
서른 살이라...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젊다고는 할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이 서른에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다는 건, 대체 무엇인가, 지로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p. 209
- 쳇. 네가 그 나이 되어 봐라. ㅡㅡ;;;
- 초딩 6학년인 주인공에게 할 소리냐 그게?
- 난 29.99999세 해야지. -_,-;;;


남쪽으로 튀어 Southbound
오쿠다 히데오 지음 | 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2006
- 조랑 릭스비가 멕시코 음식 시켰을 때 전 불평 안 했어요.
- 멕시코 음식이 왜 싫은데?
- 실란트로 향을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도 전 야단 안 떨어요.
- 아, 안 그래? 왜?
- 어울리려면 하지 말아야 할 때도 있죠.
눈에서 멀어진다고 해서 마음도 멀어지는 것은 참사랑이 아니다.
참사랑이라면 눈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은 그만큼 더 가까워져야 할 것이다.
눈에서 멀어졌다고 마음까지 멀어지는 것은 참우정이 아니다.
참우정이라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그만큼 더 가까워져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최인호의 《산중일기》중에서 -


* 사랑은 '눈을 뜨는' 훈련입니다. 육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
마음의 눈이 밝아야 사랑도, 우정도 깊어집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마음의 눈이 더 활짝 떠져서
더 가까이 더 잘 보이는 관계가 진정한 참사랑, 참우정의 모습입니다.

어제 배달된 고도원의 아침편지. 매달 후원금(얼마 안 됨 ㅎ)이 자동이체로 퐁당퐁당 빠져나가는데도 편지함에는 250통이 넘도록 안 읽고 쌓여 있는데... -_-; 바로 어제 옆구리를 푹 찌르는 내용이 도착해 있었구나.

Out of sight, out of mind가 날이 갈수록 위력을 발휘하는 내 모습에도 반성을-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