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된 억류자에게 더 이상 심리적인 치료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리라.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큰 심리적 압박을 받아 온 사람은 특히 그 압박이 아주 갑자기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자연히 석방된 뒤 얼마간 아주 위험한 상태에 놓이기 마련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 위험한 상태는 심리적 잠수병에 해당한다. 정신적인 압박에서 갑자기 풀려난 사람도 심리적, 정신적 건강이 손상될 수 있다.
관찰 결과 이 심리적 단계에서 보다 원시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수용소 생활을 할 때 그들을 에워싸고 있던 잔인성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제 자유로워진 그들은 자신의 자유를 방자하고 무자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있어 바뀐 것은 단지 그들이 이제는 억압받는 자가 아니라 억압자라는 것 뿐이었다. 그들은 의도적인 폭력이나 부당한 처사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의 선동자였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자신의 끔찍한 경험으로 정당화했다. 이것이 종종 외관상 하찮아 보이는 사건들에서 드러났다. 한 친구가 나와 함께 들판을 가로지르며 수용소를 향해 걸어가다가 갑자기 농작물이 푸릇푸릇 자라고 있는 밭에 이르렀다. 자동적으로 나는 그곳을 피했지만, 그는 내 팔을 잡고 나를 질질 끌면서 그곳을 지나갔다. 나는 더듬으며 뭐라고 말하면서 어린 농작물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자 그는 불쾌하게 여기고는 화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소리쳤다.
"그럴까! 우리가 빼앗긴 것으로 충분하지 않아?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고, 내 아내와 자식이 독가스로 살해됐어! 그런데 이까짓 귀리 몇 포기도 못 밟게 해?"
서서히 점차적으로만 이런 사람들이 설사 부당한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도 부당한 짓을 저지를 권리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이런 진리를 다시 깨우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지 않으면 귀리 수 천 포기 손실보다 더 나쁜 결과가 초래되었을 것이다. 나는 셔츠 소매를 걷어올리고 오른손을 내 코 밑에 내밀며 "집에 도착한 날 내가 이 손을 피로 물들이지 않으면 차라리 손을 잘라 버릴 거야!" 라고 소리쳤던 억류자를 아직도 떠올릴 수 있다. 나는 이 말을 한 사람이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는 수용소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가장 훌륭한 동료였다.
Victor E. Fankl, Ein Psychologe erlebt das Konzentrationlarger, Ch.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