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우주선들은 간청과 논쟁과 협박을 통해 우리 우주선을 멈추려고 했다. 그러나 간청은 우리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논쟁은 우리를 설득하지 못했다. 협박은 은하계 사이의 빈 공간만큼이나 공허했다.
훗날 몇 번이나 이런 여행을 경험한 뒤에, 나는 이 힘 없는 모기 같은 '단체' 구성원이 어디에나 널려 있으며, 끈질기고 헛된 노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다수의 우주선은 후방 미러에서 번득이는 빛들을 상대론적 공간 특유의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보는 눈이 바뀌었다는 점을 시인해야겠다. 우리가 예의 '빅뱅'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주 팽창의 적어도 절반은 우리와 같은 우주선에 의해 생겨난 것이었다. 오염의 파도를 타고, 공간을 더 많은 공간으로 채움으로써 미래의 후손들에게 나쁜 환경을 떠맡기는 우주선들에 의해.
그런 광경을 머리에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토록 우주선이 많았다니. 자기들 생각만 하고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추구하며 무작정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는 이런 우주선들 탓에 전 우주는 매일, 매년, 매십억 년 단위로 변화하고 있다. 모든 천체가 지금보다는 가까웠던 옛날 옛적에는 다른 종류의 이동수단으로도 그럭저럭 만족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시절에 살던 존재들은 절제할 수도 있었다. 그들이 절제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BHG 엔진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반면, 미래의 존재들도 아마 우리에 대해 똑같은 소리를 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별들과 은하계들이, 바로 이 시대에 사는 우리가 근시안적으로 창조한 엄청난 심연에 의해 서로를 거의 볼 수도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먼 미래에는 말이다.
오호 통재라, 가능한 한 빨리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극기심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전 우주의 팽창이라는 상상을 초월한 규묘의 사건에 우리가 티끌만큼 기여한들 그게 뭐 대수겠는가? 우리가 여기서 멈춘다고 해도 사태가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여튼 간에, 우리의 우주선 엔진은 기쁜 듯이 웅웅거린다. 안전 한계에 아슬아슬하게 근접한 속도로 달리며 광속의 벽에 도전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요즘은 후방 미러를 보는 일이 거의 없으며... 잠깐 멈춰 서서 마냥 붉어지기만 하는 빛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데이비드 브린, "붉어지기만 하는 빛", pp. 93-99




하드 SF 르네상스 2
그렉 이건 외 지음 | 김상훈, 이수현 옮김
행복한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