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여 이 꼬부렁꼬부렁은... 지렁이여 글씨여?
오랜만에 돌아온 묻는 사람은 없어도 나는 답한다 시리즈.
여러 사람이 콩알만한 불만과 의구심을 가지고 조금 궁금하기는 한데 꼭 굳이 정체를 파헤치고 싶지는 않은 궁시렁의 영 이해하기 짜증나는 습성:
왜 메모를 영어로 해?!? (예전에도 등장했던 바냐님의 관련 트윗질 참조)
일단 답은 : 쓰기 쉬우니까.
잠깐만요. 금방이라도 알아서 터질 것 같은 토마토, 삶지도 않았는데 벌써 상한 달걀, 잡귀를 물리친다는 왕소금, 신고 있던 신발, 그 신발이 툭툭 치던 돌멩이, 기타등등 주위에 집어던질만한 것들이 있어도 조금만 참으세요. 분노와 역정과 짜증을 깔끔하게 처리하시라고 댓글 창이라는 분리수거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자, 다시 맨 처음에 거대한 낯짝을 들이민 저 다이어리 메모 스캔을 들여다 보면, 왼쪽은 대기권 최상층을 가볍게 부르르 떨며 엄청난 속도로 날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식판(뭐라고 불러야 함?)에 놓고 끄적인 메모, 오른쪽은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끄적인 메모다.
(아, 혹시나 오해할까봐 미리 얘기하는데, 저 글씨 잘 써요. (응?) 음... 옛날엔 잘 썼어요. (응??) 음... 특정한 경우 팔에 엄청난 힘을 주고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면 모두가 만족하는 어른 같은 글씨를 썼고, 보통 때는 어른들이 싫어하는 둥글고 각진 글씨를 썼어요. (이쯤해서 등장하면 짜고 친다고 또 돌을 던질 것 같은 매치어님의 보충 발언 : 택배 상자에 씌인 글씨로는 성별을 분간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날이 갈수록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명바기의 안사람이 어린이날이라고 동자승을 자기 집에 초청해 양도 별로 없는데 질소로 빵빵하게 부풀리기만 한 포장에 나트륨만 잔뜩 묻힌 저질 과자에 식용색소가 다 녹지도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설탕물을 먹이면서 좋다고 히죽대는 게 아니라 유기농 밀가루로 반죽을 빚어 직접 구운 따뜻한 쿠키와 텃밭에서 딴 과일을 손수 갈아 만든 영양만점 생과일 주스를 대접하는 일보다 아주 조금 더 자주 일어날 뿐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누군가는 질책하고 누군가는 예쁘다고 하는 글씨체는 점점 그 명맥이 끊기고 있을 뿐이랍니다)
어쨌거나, 정상적으로 글씨를 적기 어려운 환경(이를테면 걸어가며 다이어리만 든 상태에서 메모를 해야 한다던가)에서는 글자마다 획이 떨어진 한글보다 안 먹고는 못산다는 후루룩 후루룩 후루룩 국수처럼 후루룩 쓸 수 있는 알파벳이 메모에 훨씬 적당하(다고 적어도 나는 주장한)다. (물론 그 상태에서는 적어가며 메모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그리고 책상에 편안히 앉은 상태에서도 자음과 모음 하나하나 또박또박 적어야 하(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글자와 글자를 이어서 쓰려면 나중에 오히려 더 판독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한글과는 달리, 뭐가 잘났다고 한 언어를 머리 속에서 다른 언어로 변환한 뒤 그걸 좋다고 휘리릭 적는 쓸데없이 복잡하고 끔찍하게 효율이 떨어지는 체계를 별 뚜렷한 근거도 없이 선호한다.
- 이봐, 당신이 당신 입, 아니, 그러니까 손, 아니 뭐 어쨌거나 한국어를 영어로 옮겼다가 그걸 보고 다시 한국어로 풀어놓는 과정에서 내용이 왜곡되는 경우도 있고 분량도 줄어들기도 한다며! 게다가 후루룩 갈겨썼다가 당신도 자기가 뭐라고 썼는지 몰라서 한참 헷갈릴 때도 있다며!
- 아, 물론 맞는 말인데요, 그보다 지금 바로 이 궁시렁도 어젯밤 자기 전 침대에서 터치팟으로 '영어로' 메모했다는 건 미리 알립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