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한 여자가 다가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홀든 콜필드 아냐!" 릴리언 시먼스였다. 한때 형이랑 어울려 다녔던 여자다.
"안녕하세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워낙 자리가 비좁다 보니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엉덩이에 뭔가 찔리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해군 장교와 같이 있었다.
"이런 데서 만나다니, 정말 반갑다 얘." 릴리언 시먼스가 말했다. 억지로 꾸며낸 인사말이었다. "네 형은 어떻게 지내니?"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것일 것이다.
"잘 지내요. 지금은 할리우드에 가 있어요."
"할리우드? 정말 대단하구나! 거기서 뭘 하는데?"
"전 잘 몰라요. 아마 글을 쓸 거에요."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형이 할리우드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녀는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형의 소설을 읽지 않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 좋을 거야." 릴리언이 말했다. 그러고는 같이 있던 해군 장교를 소개해 주었다. 블롭 중령인가 하는 그 남자는 악수하면서 손가락을 마흔 개 가량은 부러뜨려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난 그런 인간을 싫어했다. "혼자 있는 거야?" 릴리언이 물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를 완전히 막고 있어서 웨이터는 그녀가 비켜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웃긴 일이었다. "얘 잘 생기지 않았어?" 릴리언이 해군에게 말했다. "홀든, 그 동안 훨씬 미남이 된 것 같아." 해군은 그녀가 통로를 온통 막고 서 있다는 걸 지적하고는, 그만 자리로 가자고 말했다. "홀든, 술잔 가지고 우리 자리로 와." 릴리언이 말했다.
"지금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만나볼 사람이 있어서요." 그녀는 내게 잘해 주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내가 형에게 그 얘기를 전하도록 말이다.
"둘러대기는. 그래. 맘대로 해. 형을 만나면 내가 증오한다고 전해줘."
그러고 그녀는 가 버렸다. 해군 장교와 나는 서로 만나서 반가웠다는 인사를 나눴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전혀 반갑지도 않은 사람에게 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해야 한다니.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그런 말들을 해야만 한다.
릴리언에게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말해 버렸기 때문에, 그곳을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계속 거기서 어느 정도는 들어볼 만한 어니의 연주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릴리언 시먼스와 해군 장교와 같이 있고 싶지는 않았다. 끔찍하게 지겨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나왔다. 사람들은 정말이지 언제나 남의 일을 훼방 놓곤 한다.

 

제롬 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pp.119-121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 공경희 옮김

민음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