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관점은 자연의 한 가지 심오한 사실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협동 조직이 특별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기적 행위자,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행위자가 협동을 하는 상황이 있다. 협동은 강력하고 혜택을 낳는다. 사냥꾼은 무리를 지으면 각자 홀로 행동할 때보다 훨씬 더 큰 동물을 잡을 수 있고 위험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선택은 협동을 선호할 수 있다. 그러나 협동은 불안할 때가 종종 있다. 자신의 기여분은 최소화하면서 집단 생산된 혜택은 공짜로 얻으려는 유혹에 직면할 때가 종종 있다. 선택은 때로 그렇게 무임 승차에 성공한 자를 선호하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아무도 무임 승차를 하지 않았을 때보다 무임 승차가 모두를(심지어 무임 승차자까지도) 더 열악하게 만든다고 할지라도 선택이 무임 승차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설령 모두가 전보다 더 열악해진다고 해도 무임 승차자가 선량한 시민보다 상대적으로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무임 승차자는 세상을 모두에게 더 열악하게 만들지만, 무임 승차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특히 더 열악하게 만든다. 따라서 선택은 무임 승차를 선호한다.
불합리하게 보이는 것이 이해 갈등의 부수적 효과일 때가 종종 있다. 개쳬의 불합리성은 때로 모여서 집단적 아둔함이 되기도 한다. 이스터 섬은 인간의 가장 (자기)파괴적인 행동의 결과를 보여 주는 유명한 사례이다. 그 낙원같던 섬은 헐벗고 침식된 황무지로 변했고, 지금은 부서진 석상과 서로 으르렁대는 씨족들만이 흩어져 살고 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과잉 착취의 심리학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면서 그것이 자기 파괴적인 탐욕적 사고 방식이라고 추측한다.
나는 가끔 자문하곤 한다. "마지막 야자수를 벤 이스터 섬 주민은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현대의 벌목꾼처럼 "나무보다 일거리가 더 중요해"라고 했을까, 아니면 "걱정 마, 기술이 다 해결해 줄 테니, 나무를 대체할 걸 찾게 될 거야"라고 했을까.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적어도 다른 씨족 녀석들은 못 가질 테지." 야자수를 전멸시킨 이스터 섬 주민은 그 나무를 얻지 못한 다른 주민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나았고, 나무를 보존했다면 모두가 혜택을 보았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 세계의 불합리한 것들 중에는 사회 전체에 좋은 것과 그 사회 내 개인에게 좋은 것 사이의 갈등인 산물인 것들이 상당히 많다. 이스터 섬이 생태적으로 최종 붕괴하기 전에 그 사회는 엄청난 잉여 산물을 거대한 석상을 세우는 데 소비했다. 경쟁 관계에 있는 씨족의 족장들 사이에 지위 경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행위는 집단 내 대다수에게 엄청난 비용을 부담시켰다. 하지만 권력을 과시한 지도층은 혜택을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어리석은 행동을 보면 우리는 반드시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그런 짓을 하는 것일까?
킴 스티렐리, '음탕한 영장류' in 앨런 그래펀, 마크 리들리 (ed) "리처드 도킨스 - 우리의 사고를 바꾼 과학자" pp. 298 - 299
리처드 도킨스 - 우리의 사고를 바꾼 과학자 Richard Dawkins: How a Scientist Changed the Way We Think
앨런 그래펀, 마크 리들리 엮음 / 이한음 옮김
을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