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80년경 "넝마 종이1의 페스트"가 수집가들의 세계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 기원은 불확실하지만 아마 아시아의 어느 머나먼 지방에서 유래한 박테리아(학명은 코메스토르 린테이 시넨시스Comestor lintei sinensisi)가 서구 세계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넝마 종이를 훼손시켰다. 말하자면 구텐베르크 시절 이후부터 19세기 중엽, 즉 섬유소로 생산한 종이가 사용되기 시작할 때까지 제작된 모든 책이 대상이었다. 정말로 멋진 운명의 장난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까지는 목재로 만들어진 종이는 70년이 지나면 썩지만, 그와 달리 넝마로 만들어진 종이는 당당하게도 썩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써 오래 전부터 전 세계의 출판인들은 '중성지'로 만든 고급 책을 생산하고 있었다. 따라서 목재 종이는 아주 깨끗한 고서적들의 신선하고 바삭거리는 넝마 종이에 저항하면서, 오랜 세월에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2080년 경에 이르러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목재 종이는 세월에도 끄떡없게 되었을뿐 아니라, 과거에는 인쇄업자들의 영광이었던 넝마 종이는 전 세계의 도서관에서 코메스토르 시넨시스의 음울한 활동과 함께 문자 그대로 가루가 되기 시작했다.
맨 먼저 "히프네로토마키아 필리폴리"2 ii의 모든 판본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조금씩 좀이 슬기 시작했다. 이어서 종잇장들은 아주 가느다란 거미줄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엄청나게 값비싼 종이들이 완전히 분해되어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화학자들의 노력도 소용없었고, 볼록 판형을 만들어 구원해 보려는 불쌍한 시도가 있었지만 너무 늦었다. 책들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1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아델피 출판사의 "필리폴리" 새 판본(현재 가격으로 1천 글로볼, 그러니까 20세기의 돈으로는 대략 1백만 달러는 호가하는)은 거의 거미줄 같은 페이지를 드러냈고, 최소한 글자의 절반 정도는 이미 상실되었다.
이어서 뉘른베르크의 연대기, 포레스티의 부록들, 타소와 아리오스토 작품의 초판본들, 1623년에 출판된 셰익스피어의 2절판 책들, "백과사전" 전집들이 희끄무레한 구름이 되어 세계의 대규모 도서관에서 이미 황량해진 열람실들에 떠다니고 있었다. 사방에 늘어선 벽들은 모든 보물을 빼앗긴 서가들의 텅 빈 커다란 눈과 함께 그 죽음의 날갯짓을 응시할 뿐이었다.
문화적 상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재난의 즉각적인 경제적 타격은 실로 엄청났다. 1929년 경제 대공황의 가장 음울했던 몇 달 동안처럼, 크라우스3 가문의 상속인들은 뉴요크 5번가의 길모퉁이에서 사과를 팔았고, 베른르 클라브레유4는 센 강변을 따라 오렌지 껍질을 쓰레기통에 주워 담고 있었으며, 런던의 가장 하층 빈민가에서는 파무어 경과 콰리치사5의 직원들이 비쩍 마른 몰골로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안개, 불붙은 석탄의 불티가 바람에 흩날리는 가운데 배회하고 있었다. 한 쪽 신발은 굽이 떨어져 나갔고 낡은 긴 외투는 더러운 헝겊을 덧대어 누더기가 되었으며, 한 손으로는 병든 아이를 붙잡은 채 행인들에게 자선을 구걸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의 스크루지 아저씨처럼 무관심하고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그런 재난에서 품위있게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은 마리오 스코냐밀리오6였다. 그는 로고메도7의 어느 빵집에서 특별히 만드는 나폴리식 파이의 소매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는 동안 수집가나 서적상 모두 충격에서 벗어나 서서히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수집가들은 본능적인 수집 욕심에 이끌렸고, 서적상들은 합리적인 '아우리 사크라 파메스'8에 이끌렸던 것이다. 고서적 시장은 근대 골동품을 중심으로 다시 정비되었다. 그러니까 "집 없는 천사"와 쥘 베른의 하드커버 판본들에서 아주 최근의 작품들까지 그 대상이 되었는데, 최근 작품들은 출간된 지 1년도 지나기 전에 벌써 골동품이 되었다(특히 인터넷과 전자책의 승리와 함께 인쇄된 책은 이제 애호가나 실리콘 알레르기가 있는 독자만을 위해 아주 제한된 부수만 생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월한 안니발레 로시의 시집, 존 스미스의 소설, 브람빌라의 경구 모음, 파우타소의 평론집, 로몰레토 피치고니 또는 살바토레 에스포시토의 전집은 벌써 수천만 달러iii를 호가하게 되었다. 20세기 90년대의 어느 잔인한 인물의 책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3백만 달러에 팔렸는데, 일본의 어느 은행이 구입하였다.
물론 그것은 저자의 서명이 들어 있지 않은 판본들이었다. 사실 이제는 골동품 시장의 옛날 법칙을 뒤엎는 또 다른 현상으로서 '비교류 판본non-association copy'이 특히 높게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달리 과거의 작품에서는 가령 '저자 기증'이라는 자필 헌사가 붙은 키르허9 신부의 책은 진본 또는 탁월한 희귀본으로 간주되었으며, 심지어 베빌라쿠아10에게 헌정한 코르델리11의 책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골동품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실 20세기 중엽부터 작가가 책을 한 권 출간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일련의 작업에 연루되지 않을 수 없었다. 1) 출판사 사무실에서 언론(기증 도서), 비평가와 언론 지도자들을 위해 최소한 1백 부에 서명하고,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들, 스트레가 문학상12, 비아레조 문학상13의 심사위원들, 그리고 나중에 캄파엘로 문학상14의 민간 심사위원이 될 수도 있는 베네치아 지역의 환경 운동가나 노동자들에게 나눠 줄 몇백 부에다 서명하는 작업, 2) 이탈리아 100대 도시의 수많은 서점에 앉아서 그곳에 있는 독자 대중을 위해 서명하는 작업, 그리고 3) 서점 상인들을 위한 수천 부에 서명하는 작업. 그런데 서적상들은 나중에 단골 고객들에게 그게 유일한 책이라고 장담하면서 은밀하게 가격을 올려 팔곤 했다. 간단히 말해 실질적으로 인쇄된 책 전체에 저자의 서명이 들어 있게 되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비평가나 기자, 심사위원, 친구들은 서명된 책을 받으면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거나, 또는 감옥(감옥에서는 책장을 마리화나 담배를 마는 데 사용했다)이나 병원(병원에서는 그곳에 서식하는 쥐들이 갉아먹었다)에 기증했다. 그런 사실을 고려해 보면 서명된 책의 유통 부수가 너무 많아졌고, 결국 가치가 떨어져 희귀본 책들의 시장에서 배제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점차 교류의 흔적이 없는 극소수 판본들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2091년에 이미 피암메타 소아베사15는 철저하게 서명이 없는 올리비에로 딜리베르토16의 짤막한 시 "실비아에게"17를 5천만 달러를 매겨 목록에 올려놓았다. 서명이 없는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의 또 다른 짧은 시 "실비오에게"iv는 1억에 메디올라눔18에 팔렸다. 서명이 전혀 없이 깨끗하고, 마르첼로 델루트리19의 애정어린 서문이 실린 보렐리20의 전집(베를루스코니 출판사, 유토피아 도서관)은 2억에 프렐리아스코21의 목록에 오르게 되었다.
마리오 스코냐밀리오는 나폴리식 파이 소매상을 집어치우고 자신의 책방을 다시 열었는데, 줄리오 안드레오티v의 "나의 감옥 생활"22(2001) 깨끗한 판본 하나를 2억에 팔면서 고서적 시장에 의기양양하게 복귀했다. 그 책은 바로 저자가 자신의 친구인 어느 신부(神父)에게 결혼 선물로 보낸 것인데, 일종의 액막이로 일부러 어떤 확인 표시도 하지 않은 판본이었던 것이다.
미네르바 성냥갑 La Bustina di Minerva
움베르토 에코
밀라노, 봄피아니, 2000
= 번역자 김운찬의 주석 =
= 궁시렁의 추가 주석 =
+ 이럴수가!!! 이 쾌활하고 명랑한 글이 움베르토 에코가 쓴 게 아니라 더글러스 애덤스의 컴퓨터에 꼭꼭 숨겨져 있다가 우연히 발견되어 발표된 거라고 해도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믿을 것이다. ㅋㅋㅋ
하지만 벌써 오래 전부터 전 세계의 출판인들은 '중성지'로 만든 고급 책을 생산하고 있었다. 따라서 목재 종이는 아주 깨끗한 고서적들의 신선하고 바삭거리는 넝마 종이에 저항하면서, 오랜 세월에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2080년 경에 이르러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목재 종이는 세월에도 끄떡없게 되었을뿐 아니라, 과거에는 인쇄업자들의 영광이었던 넝마 종이는 전 세계의 도서관에서 코메스토르 시넨시스의 음울한 활동과 함께 문자 그대로 가루가 되기 시작했다.
맨 먼저 "히프네로토마키아 필리폴리"2 ii의 모든 판본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조금씩 좀이 슬기 시작했다. 이어서 종잇장들은 아주 가느다란 거미줄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엄청나게 값비싼 종이들이 완전히 분해되어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화학자들의 노력도 소용없었고, 볼록 판형을 만들어 구원해 보려는 불쌍한 시도가 있었지만 너무 늦었다. 책들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1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아델피 출판사의 "필리폴리" 새 판본(현재 가격으로 1천 글로볼, 그러니까 20세기의 돈으로는 대략 1백만 달러는 호가하는)은 거의 거미줄 같은 페이지를 드러냈고, 최소한 글자의 절반 정도는 이미 상실되었다.
이어서 뉘른베르크의 연대기, 포레스티의 부록들, 타소와 아리오스토 작품의 초판본들, 1623년에 출판된 셰익스피어의 2절판 책들, "백과사전" 전집들이 희끄무레한 구름이 되어 세계의 대규모 도서관에서 이미 황량해진 열람실들에 떠다니고 있었다. 사방에 늘어선 벽들은 모든 보물을 빼앗긴 서가들의 텅 빈 커다란 눈과 함께 그 죽음의 날갯짓을 응시할 뿐이었다.
문화적 상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재난의 즉각적인 경제적 타격은 실로 엄청났다. 1929년 경제 대공황의 가장 음울했던 몇 달 동안처럼, 크라우스3 가문의 상속인들은 뉴요크 5번가의 길모퉁이에서 사과를 팔았고, 베른르 클라브레유4는 센 강변을 따라 오렌지 껍질을 쓰레기통에 주워 담고 있었으며, 런던의 가장 하층 빈민가에서는 파무어 경과 콰리치사5의 직원들이 비쩍 마른 몰골로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안개, 불붙은 석탄의 불티가 바람에 흩날리는 가운데 배회하고 있었다. 한 쪽 신발은 굽이 떨어져 나갔고 낡은 긴 외투는 더러운 헝겊을 덧대어 누더기가 되었으며, 한 손으로는 병든 아이를 붙잡은 채 행인들에게 자선을 구걸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의 스크루지 아저씨처럼 무관심하고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그런 재난에서 품위있게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은 마리오 스코냐밀리오6였다. 그는 로고메도7의 어느 빵집에서 특별히 만드는 나폴리식 파이의 소매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는 동안 수집가나 서적상 모두 충격에서 벗어나 서서히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수집가들은 본능적인 수집 욕심에 이끌렸고, 서적상들은 합리적인 '아우리 사크라 파메스'8에 이끌렸던 것이다. 고서적 시장은 근대 골동품을 중심으로 다시 정비되었다. 그러니까 "집 없는 천사"와 쥘 베른의 하드커버 판본들에서 아주 최근의 작품들까지 그 대상이 되었는데, 최근 작품들은 출간된 지 1년도 지나기 전에 벌써 골동품이 되었다(특히 인터넷과 전자책의 승리와 함께 인쇄된 책은 이제 애호가나 실리콘 알레르기가 있는 독자만을 위해 아주 제한된 부수만 생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월한 안니발레 로시의 시집, 존 스미스의 소설, 브람빌라의 경구 모음, 파우타소의 평론집, 로몰레토 피치고니 또는 살바토레 에스포시토의 전집은 벌써 수천만 달러iii를 호가하게 되었다. 20세기 90년대의 어느 잔인한 인물의 책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3백만 달러에 팔렸는데, 일본의 어느 은행이 구입하였다.
물론 그것은 저자의 서명이 들어 있지 않은 판본들이었다. 사실 이제는 골동품 시장의 옛날 법칙을 뒤엎는 또 다른 현상으로서 '비교류 판본non-association copy'이 특히 높게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달리 과거의 작품에서는 가령 '저자 기증'이라는 자필 헌사가 붙은 키르허9 신부의 책은 진본 또는 탁월한 희귀본으로 간주되었으며, 심지어 베빌라쿠아10에게 헌정한 코르델리11의 책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골동품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실 20세기 중엽부터 작가가 책을 한 권 출간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일련의 작업에 연루되지 않을 수 없었다. 1) 출판사 사무실에서 언론(기증 도서), 비평가와 언론 지도자들을 위해 최소한 1백 부에 서명하고,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들, 스트레가 문학상12, 비아레조 문학상13의 심사위원들, 그리고 나중에 캄파엘로 문학상14의 민간 심사위원이 될 수도 있는 베네치아 지역의 환경 운동가나 노동자들에게 나눠 줄 몇백 부에다 서명하는 작업, 2) 이탈리아 100대 도시의 수많은 서점에 앉아서 그곳에 있는 독자 대중을 위해 서명하는 작업, 그리고 3) 서점 상인들을 위한 수천 부에 서명하는 작업. 그런데 서적상들은 나중에 단골 고객들에게 그게 유일한 책이라고 장담하면서 은밀하게 가격을 올려 팔곤 했다. 간단히 말해 실질적으로 인쇄된 책 전체에 저자의 서명이 들어 있게 되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비평가나 기자, 심사위원, 친구들은 서명된 책을 받으면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거나, 또는 감옥(감옥에서는 책장을 마리화나 담배를 마는 데 사용했다)이나 병원(병원에서는 그곳에 서식하는 쥐들이 갉아먹었다)에 기증했다. 그런 사실을 고려해 보면 서명된 책의 유통 부수가 너무 많아졌고, 결국 가치가 떨어져 희귀본 책들의 시장에서 배제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점차 교류의 흔적이 없는 극소수 판본들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2091년에 이미 피암메타 소아베사15는 철저하게 서명이 없는 올리비에로 딜리베르토16의 짤막한 시 "실비아에게"17를 5천만 달러를 매겨 목록에 올려놓았다. 서명이 없는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의 또 다른 짧은 시 "실비오에게"iv는 1억에 메디올라눔18에 팔렸다. 서명이 전혀 없이 깨끗하고, 마르첼로 델루트리19의 애정어린 서문이 실린 보렐리20의 전집(베를루스코니 출판사, 유토피아 도서관)은 2억에 프렐리아스코21의 목록에 오르게 되었다.
마리오 스코냐밀리오는 나폴리식 파이 소매상을 집어치우고 자신의 책방을 다시 열었는데, 줄리오 안드레오티v의 "나의 감옥 생활"22(2001) 깨끗한 판본 하나를 2억에 팔면서 고서적 시장에 의기양양하게 복귀했다. 그 책은 바로 저자가 자신의 친구인 어느 신부(神父)에게 결혼 선물로 보낸 것인데, 일종의 액막이로 일부러 어떤 확인 표시도 하지 않은 판본이었던 것이다.
미네르바 성냥갑 La Bustina di Minerva
움베르토 에코
밀라노, 봄피아니, 2000
= 번역자 김운찬의 주석 =
- 서양에 처음으로 종이 제작 기술이 전파되었을 때, 그 주원료는 헌 마(麻)나 아마, 면 섬유 등을 넝마 형태로 수집해 사용하였다. 하지만 넝마는 수집으로 충당하기에는 부족하고 값도 비쌌다. 그러다가 18~19세기에 걸쳐 산업화와 함께 펄프 등 섬유소를 화학적으로 처리한 근대적인 형태의 종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 Hypnerotomachia Poliphili. 콜론나Francesco Colonna의 작품으로 이탈리아어로는 '폴리필로' 또는 '폴리필로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인용된다.
- 현재 미국의 가장 유명한 고서적 거래상들 중 하나.
- 현재 파리의 유명한 고서적 판매상.
- 1847년 런던에서 창립된 고서적과 필사본 거래 전문 회사.
- 1990년 밀라노에서 창간된 골동품 및 도서 애호가들을 위한 전문 잡지의 편집인이며, 고서적 전문 서점을 소유하고 있다.
- 밀라노의 구역 이름.
- auri sacra fames.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3권 57행에 나오는 표현으로 '황금에 대한 지독한 욕심'을 의미한다.
- Athanasius Kircher(1601-1680). 도이칠란트의 예수회 수도사. 철학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헌학적 연구, 공상 과학적 해석, 음악, 물리학, 지질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 Alberto Bevilacqua(1934-). 이탈리아의 작가로 수많은 작품과 함께 여러 잡지와 신문에 기고하고 있다.
- Franco Cordelli(1943-). 이탈리아의 작가로 여러 편의 소설과 평론집, 시집을 발표하였다.
- 1947년 일단의 문인들이 로마에서 창립한 문학상으로 매년 현대 소설 작품 중에서 한 편을 골라 시상한다. 현대 이탈리아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으로 꼽힌다.
- 1930년부터 시상하기 시작한 이탈리아의 주요 문학상 중의 하나.
- 1963년 베네치아에서 시작된 문학상.
- 현재 로마에 있는 고서적 책방의 이름.
- Oliviero Diliberto(1956-). 현재 이탈리아 공산당 계열의 하원의원.
- A Silvia. 이 시는 원래 레오파르디의 서정시로 유명하다.
- 현재 밀라노에 있는 고서적 책방의 이름.
- Marcello Dell'Utri(1941-). 정치가로 1994년 '힘내라 이탈리아Forza Italia'당의 창당 멤버였고 1996년 하원의원이 되었으며, 1999년에는 유럽의회의원, 2001년에는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 Francesco Saverio Borreli. 밀라노의 검찰청장으로 1992-1998년에는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깨끗한 손Mani Pulite'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 현재 토리노에 있는 고서적 책방의 이름.
- Le mie prigioni. 원래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던 펠리코Silvio Pellico(1789-1854)의 옥중기. 그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읽힌 감동적인 작품으로 1832년에 출간되었다.
= 궁시렁의 추가 주석 =
- 아시아라고 하면 1순위로 갖다붙이는 것이 중국인 것은 에코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 -ㅅ-;;;
- 움베르토 에코의 최신 소설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의 주인공인 얌보의 박사 논문이 이 작품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 그러니까 미래의 화폐 단위로 따지면 수만 글로볼이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이 뒤로도 글로볼은 나오지 않는다.
-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는 밀라노 검찰청장 시절 깨끗한 손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후 장관직을 거쳐 정치가로 변신, 현재 유럽의회의원이며 부패 척결을 모토로 하는 이탈리아 가치당(Italia dei Valori)을 이끌고 있다. 실비오란 물론 이탈리아의 최고 부자이자 AC밀란 구단주면서 깨끗한 손 운동을 피해 힘내라 이탈리아당을 창당한 뒤 온갖 정경유착 의혹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국무총리를 지내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말한다.
- 총리를 7차례, 장관을 36차례나 역임했으나 깨끗한 손 운동 이후 열린 1994년 총선에서 패배한 뒤 2억5천만리라(1억3천만원)의 불법 정치 자금 조성혐의로 법정에서 심판을 받았다.
+ 이럴수가!!! 이 쾌활하고 명랑한 글이 움베르토 에코가 쓴 게 아니라 더글러스 애덤스의 컴퓨터에 꼭꼭 숨겨져 있다가 우연히 발견되어 발표된 거라고 해도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믿을 것이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