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깐 얕은 잠을 잔 모양이다. 내 귀에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으니 말이다. 찾아온 사람은 잔니 라이벨리였다. 글동무인 그와 나는 카스토르와 폴룩스 같은 단짝이었다. 그는 마치 형제처럼 나를 끌어안으며 감격스러워 했고,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벌써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네 삶에 대해서는 내가 너보다 잘 아니까 자세하게 얘기해 줄게,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고맙지만 파올라가 이미 우리 얘기를 해 줬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동기동창이었다. 그 다음에 나는 토리노 대학에 진학했고, 그는 밀라노에 가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한 번도 멀어졌던 적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고서적을 팔고 있고, 그는 사람들이 세금을 내거나 내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저마다 자기 길을 갈 수도 있었을 법 하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한 가족처럼 지낸다. 그의 두 손자는 내 손자들과 놀고, 우리는 크리스마스와 설날을 언제나 함께 보낸다.움베르토 에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p. 71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La Misteriosa Fiamma della Regina Loana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