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해당하는 궁시렁 3

  1. 2009.02.11 심리적 잠수병 (2)
  2. 2008.10.11 번역은 제발 표준어로 (7)
  3. 2008.09.25 Jewish, but not Israeli (추가) (6)
석방된 억류자에게 더 이상 심리적인 치료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리라.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큰 심리적 압박을 받아 온 사람은 특히 그 압박이 아주 갑자기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자연히 석방된 뒤 얼마간 아주 위험한 상태에 놓이기 마련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 위험한 상태는 심리적 잠수병에 해당한다. 정신적인 압박에서 갑자기 풀려난 사람도 심리적, 정신적 건강이 손상될 수 있다.
관찰 결과 이 심리적 단계에서 보다 원시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수용소 생활을 할 때 그들을 에워싸고 있던 잔인성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제 자유로워진 그들은 자신의 자유를 방자하고 무자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있어 바뀐 것은 단지 그들이 이제는 억압받는 자가 아니라 억압자라는 것 뿐이었다. 그들은 의도적인 폭력이나 부당한 처사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의 선동자였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자신의 끔찍한 경험으로 정당화했다. 이것이 종종 외관상 하찮아 보이는 사건들에서 드러났다. 한 친구가 나와 함께 들판을 가로지르며 수용소를 향해 걸어가다가 갑자기 농작물이 푸릇푸릇 자라고 있는 밭에 이르렀다. 자동적으로 나는 그곳을 피했지만, 그는 내 팔을 잡고 나를 질질 끌면서 그곳을 지나갔다. 나는 더듬으며 뭐라고 말하면서 어린 농작물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자 그는 불쾌하게 여기고는 화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소리쳤다.
"그럴까! 우리가 빼앗긴 것으로 충분하지 않아?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고, 내 아내와 자식이 독가스로 살해됐어! 그런데 이까짓 귀리 몇 포기도 못 밟게 해?"
서서히 점차적으로만 이런 사람들이 설사 부당한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도 부당한 짓을 저지를 권리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이런 진리를 다시 깨우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지 않으면 귀리 수 천 포기 손실보다 더 나쁜 결과가 초래되었을 것이다. 나는 셔츠 소매를 걷어올리고 오른손을 내 코 밑에 내밀며 "집에 도착한 날 내가 이 손을 피로 물들이지 않으면 차라리 손을 잘라 버릴 거야!" 라고 소리쳤던 억류자를 아직도 떠올릴 수 있다.  나는 이 말을 한 사람이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는 수용소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가장 훌륭한 동료였다.


Victor E. Fankl, Ein Psychologe erlebt das Konzentrationlarger, Ch. 9

이스라엘 관련 궁시렁

  1. 2009/01/02 바시르와 추는 왈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9)
  2. 2008/09/25 Jewish, but not Israeli (6)

빅터 프랑클, 심리학, 이스라엘, 책 읽는 지누, 폭력
  1. BlogIcon Odlinuf 2009.02.11 23:18 신고      

    고3 학생 부모님들이 수능이 끝나면 걱정해야할 '병'이로군요. : )

    • BlogIcon 궁시렁 2009.02.12 02:12 신고      

      오호, 거기에도 적용할 수 있겠네요. ㅎㅎ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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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비젤의 "밤"을 번역한 김하락씨는 '바른 번역' 소속 번역가 겸 국어단체연합 국어상담소 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람이, 책 제목은 (친절하게도 자신이 옮긴 책의 제목 그대로, 하지만 사실 그 책은 프랑스어 원문을 영어로 번역한 거지만) "나이트"라고 했을 뿐더러(나이트클럽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개신교도인지, 뒷표지에 "하나님"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올바르게 번역한 원고를 출판사에서 마음대로 바꿔버린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동안 훌륭한 번역가들이 옮긴 책만 읽어서인지, 올바른 한국어가 아닌 이런 어처구니 없는 가당치도 않은 표현이 책 표지에 떡하니 있는 것에 짜증이 나서 읽고 싶은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제3제국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퇴각하는 죽음의 행진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수없이 쏟아지는 '하나님' 때문에 책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정말이지 굴뚝같았다.
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숫자에 님을 붙인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글의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지만, 하나+님이라는 조합은 유일신을 나타내는 상징성이 있고, 어차피 언어는 많은 사람들이 쓰는 쪽으로 계속 바뀌는 거라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기 때문에('하느님'을 사용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사용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 구체적 숫자까지 들먹임) 하나님을 표준어로 하면 좋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부드러운 제안처럼 써 놨지만 사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들이 무조건 옳은 줄 아는 (대다수) 한국 개신교의 천박한 무식함, 후안무치, 오만방자함이 철철 넘쳐흐른다. 일요일엔 교회에 가야 되니까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은 일요일에 봐서는 안 된다고 입법을 제안한 어느 정신 나간 국회의원도 있었지?

옮긴이의 글에 단골로 등장하는 난 열심히 번역했지만 그래도 부족한 점이 있다면 모두 자기 탓이라는 문구가 이 책에도 있다. '나름대로 충실히 번역한다고 했으나 저자와 독자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한다. 차마 글로 옮기기에 부족한 절멸수용소의 처참한 모습을 풀어놓은 이 책을 단 한 단어를 잘못 써서 어느 독자에게 누를 끼쳤으니, 의구심은 없어지지 않겠네. -_-;


모든 대륙에서 인권이 침해받고 있습니다. 누구나 도처에서 벌어지는 불의나 인간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그들의 처지에 아픔을 느낍니다만, 그들이 폭력적 방법에 호소할 때는 슬픔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폭력은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테러리즘은 가장 위험한 답입니다. 그들은 낙담하고 있습니다. 그건 이해합니다. 어떻게든 손을 써야 합니다. 난민들과 그들이 겪는 불행, 아이들과 그들이 겪는 공포, 쫓겨난 사람들과 그들이 겪는 절망. 그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유대 민족과 팔레스타인 민족은 둘 다 자식을 너무 많이 잃었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반목과 유혈 사태는 중지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협력할 것입니다. 그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이스라엘을 믿습니다. 유대 민족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기회를 줍시다. 이스라엘의 지평선에서 증오와 위험이 사라지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스러운 땅과 그 주변 나라에 평화가 올 것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을 기억하신다면 제가 이스라엘 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스라엘이 한 차례 전쟁에서 만에 하나 지기라도 한다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민족은 종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그가 창조한 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엘리 비젤의 1986년 노벨 평화상 수락 연설문의 일부분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하나님'에 넌덜머리가 나있어서 그런지, 놀랍게도 관용과 평화보다 선민의식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게다가 비젤의 그 굳은 믿음은 슬프게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내가 좀 흥분해서 그렇지, '하나님'만 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하지만 난 (프랑스어를 모르니까) 영어로 된 책을 보겠다. ㅡㅡ;



Night
Elie Wiesel (tr. Marion Wiesel)
New York: Farrar, Straus & Giroux, 2006


번역, 엘리 비젤, 책 읽는 지누, 폭력
  1. BlogIcon 매치어 2008.10.11 02:43 신고      

    농담 삼아서 천주교에서 '개신교와 우리는 다른 신을 믿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저흰 하느님을 믿죠.'하는데... 프랑스 분이라면 하느님을 믿으실 확률이 높겠군요~ ^^
    이런 거 보면 번역은 참... 신경쓸 게 많은 것 같습니다.

    • BlogIcon 궁시렁 2008.10.12 02:08 신고      

      한국어에서만 벌어지는 웃지 못할 촌극이죠...
      한글이 과학적으로 가장 우수하다고는 하지만 언어로서의 한국어는 그렇지 않을 거에요. -_-ㅋ

  2. BlogIcon 한가람 2008.10.12 01:27 신고      

    예수님은 '하나님'이란 단어 같은 건 생각도 안 하셨겠죠.

    • BlogIcon 궁시렁 2008.10.12 02:38 신고      

      헤브라이어는 아예 모음이 없으니, 이런 우스꽝스러운 광경은 상상도 못했을 거에요.

  3. BlogIcon ykwon 2008.10.13 15:18 신고      

    훗. 이거 오해입니다.
    하늘의 옛말에서 '늘'은 사람의 옛말에서 '람'처럼 '아래아' 모음을 씁니다.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세요)
    아래아를 표현할 방법이 없어 A로 표현하면 '하ㄴAㄹ', '사ㄹAㅁ' 이죠.

    '아래아' 모음은 사람,살고기,한글,닭,달리다 처럼 'ㅏ' 모음으로 바뀌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간혹 아들,하늘처럼 'ㅡ' 모음으로 치환되는 경우도 있긴 있습니다.
    하느님은 찾아보면 '하늘+님'으로 옛말은 '하ㄴA님'으로 나옵니다. (A는 아래아)

    제가 보기엔 하나님과 하느님 둘다 '천주'를 번역한 것으로 '하ㄴAㄹ님'->'하ㄴA님'이었는데, 발음적으로 '아래아'가 사라지면서 하날/하늘이 동시에 쓰였던 기간이 있었고 (사전에 하날은 또한 하늘의 사투리라고 나옵니다) 따라서 미처 한글 표기가 정립되기 이전에 번역하는 시기가 언제였느냐에 따라 둘로 나뉜 것이라고 봅니다. (개신교 성경과 카톨릭 성경이 번역 주체가 달라서..)

    강낭콩이 양배추 모양으로 생긴 콩이라고 우기는 것이 우스운 일이듯이 (강낭은 양배추의 다른말)
    어원을 살펴보지 않으면 오해하기 쉽상인 것이 우리말이지요.
    (요새 강낭콩이 '강남(운남)에서 나는 콩'이라는 뜻이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도 생긴 모양이 그래서 '하나(1)'+'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생각해보면 '하날님'이라는 개념이 있는 나라에서 번역자들이 그런 식으로 번역했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개신교에 대한 무한한 반감을 가지신 분들은 어떻게 해석해도 나쁜쪽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과 '하느님'을 두고 시비하는 것은 '아람다왔다'와 '아름다웠다'를 두고 시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ㄴAㄹ'->'하날'로 가는 게 더 일반적인 방향이고 실제로 그렇게 써버린 문헌(개신교 성경)도 있는데, 그 후에 대중적인 표현이 바뀌어 버린 거라고.. 그런데 어쩝니까. 동사나 형용사도 아니고 중요한 고유명사로 쓰이는 표현을 책에서 다 바꿔버릴 수도 없고.

    나중에 '하늘'이 '하널'로 바뀌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래도 카톨릭 성경은 '하느님', 개신교 성경은 '하나님' 그대로입니다.
    '하널님' 혹은 '하너님'으로 바꾸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장담하지요.
    그때쯤 가면 이런 오해가 없어지게 될까요..

    개신교 싫어하시는 건 자유지만 둘다 우리말이었던 하느님/하나님 중 한 쪽을 미워하시는 건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냥 사투리려니.. 생각하십시오.

    • BlogIcon ykwon 2008.10.13 13:57 신고      

      아 사실 이 답글은 위의 답글들에서 보이는 오해 "천주교에서 '개신교와 우리는 다른 신을 믿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저흰 하느님을 믿죠.'" 와 원글에서 보이는 오해 "하나님은 유일신의 의미이다"에 대한 답글입니다.

      원글만 읽고 바로 이 글을 읽으면 이상하게 느껴지겠네요.
      저는 원글에서의 논의에 대해서는, 고유명사대신에 보통명사인 '신'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바입니다.
      연설자가 무슬림이었으면 '알라'라고 번역하는 게 바람직할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고유명사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논란의 소지가 있으니 말이죠.

    • BlogIcon 궁시렁 2008.10.13 16:09 신고      

      아, 오해하셨습니다.
      주소를 기억할 수 없는 그 블로그 주인 및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수많은) 개신교도들이 하나님의 하나를 "the Only"로 알고 있다는 게 문제죠. 사실 원인은 권영희님께서 쓰신 글의 내용처럼 한국어의 표기법이 (다른 언어와 비교해서) 빛의 속도로 계속 바뀌기 때문인데 말이죠.
      개신교도들끼리야 어느 표현을 쓰건 제 알 바 아니지만, 다만 책을 출판할 때는 맞춤법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입니다. (이 '바람'도 20년 뒤에는 '바램'으로 바뀔 수도 있겠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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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는 가족이 살해되고 고향의 공동체를 파괴당한 유대인, 그것도 아우슈비츠의 지옥을 함께 살아 나온 그의 동료들에게 이스라엘은 매우 소중한 피난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비를 포함한 많은 유대인 지식인들의 이와 같은 생각에도 심한 균열이 생기는 때가 왔다. 1982년 6월에 이스라엘군이 PLO의 군사 거점을 공격한다는 명목으로 레바논을 침공한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가 자신이 바라는 유대 민족의 피난처라는 이미지와는 반대로 군사적 방향으로, 미숙한 방식의 파시즘적 방향으로 바뀌어 공격적인 의미에서의 내셔널리즘이 강화되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레비는 "우리는 우선 민주주의자인 다음에 유대인, 이탈리아인 등 그밖의 존재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국가가 그 이웃에 취하는 태도는 그의 양심을 찌르는 가시와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곤란에 빠졌을 때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레비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심지어 이스라엘에 있는 친구 몇몇에게서 "그동안 유대인이 흘린 피에 눈을 감고 있다"는 '비수를 꽃는 듯한' 편지를 받기도 했다.

서경식,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pp. 258-261

우리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두 가지, 즉 도덕적인 것과 정치적인 면에서 베긴1 에 반대할 수 있다. 먼저 도덕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 해도 베긴과 그의 동료들이 보여주었던 잔인한 오만함을 정당화할 수 없다. 정치적인 주장도 이와 마찬가지로 분명하다. 이스라엘은 지금 완전한 고립 상태 속으로 추락하고 있다. [중략] 우리는 보다 냉철한 이성으로 현재 이스라엘 지도부의 실수에 판결을 내리기 위해 이스라엘과의 감정적인 연대감을 억눌러야만 한다.

Primo Levi, La Republica, 24 SEP 1982,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구역에서의 대학살2 에 관한 잠파올로 판사와의 대담 중에서 발췌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プリ-モ ·レ-ヴィへの旅
서경식 지음 / 박광현 옮김
창비, 2006


주기율표 Il sistema periodico
프리모 레비 지음 / 이현경 옮김
돌베게, 2007



(책에는 없는 궁시렁의 주석)
  1. 1977년 이스라엘 총리가 되었고, 이집트와의 평화 교섭으로 1978년 사다트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1982년 레바논을 침공했고 이스라엘군이 관할하던 사브라와 샤틸라에서 벌어진 학살을 묵인하고 방치한 일로 이스라엘은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았고 Nazisrael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본문으로]
  2. PLO가 베이루트에서 철수하고 9월 15일 이스라엘군이 서베이루트를 점령한 다음날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서 친이스라엘파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무차별 대학살을 자행했다. PLO의 발표에 따르면 희생자 수는 3200명 이상에 이른다. 이스라엘 정부가 파견한 진상 조사 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의 간접적 책임이 있다. 위원회는 샤론의 공직 진출을 금지해야 한다고 결론냈지만 샤론은 약 20년 뒤 총리가 되었다. [본문으로]
서경식, 이스라엘, 책 읽는 지누, 폭력, 프리모 레비
  1. BlogIcon 웹눈 2008.09.25 11:57 신고      

    노벨평화상이 엉뚱한 사람에게 갔군요.

    • BlogIcon 궁시렁 2008.09.25 15:38 신고      

      당시 국방부 장관이 이 사건으로 베이루트의 도살자라는 별명이 붙은 아리엘 샤론이었어요. 베긴과 샤론은 들끓는 여론에도 강경하게 버티다 평화를 촉구하는 시위대 한 명이 죽고 나서야 샤론이 물러나고 베긴도 83년에 사임했습니다. 하지만 샤론은 재기에 성공해 나중에 총리 해 먹지 않았습니까. -_-;;;

  2. BlogIcon 매치어 2008.09.25 12:14 신고      

    Nazisrael이라니... 시오니즘에 나치즘을 섞으면 정말 살벌한 사상이 나오겠네요.
    전 유대에 별 관심 없어서 모르겠는데 디아스포라랑 이스라엘 정착인의 사이가 안 좋나요?

    • BlogIcon 궁시렁 2008.09.25 15:44 신고      

      저도 이스라엘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이스라엘의 끔찍한 만행에 동조할 수 없다는 지식인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항변을 했다고 생각해요.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니 더욱 그 의미가 강조되었을테고요.

  3. BlogIcon 매치어 2008.09.27 21:18 신고      

    유대 지식인들은 그간의 중동전쟁에 대해선 별 느낌이 없었나 보군요. ^^a
    어쨌든 중동전쟁이든 레바논침공이든 저런 말을 했을 때 주변에서 '이스라엘이 곤란에 빠졌을 때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는 말을 보면 '우리가 남이가...'하는 것 같기도 하고 두렵습니다. 무조건 감추는 게 좋은 게 아닐텐데 말이죠... 요즘 국사교과서 이야기도 있고 해서 추가된 글 내용에 맞게 추가코멘트합니다.

    • BlogIcon 궁시렁 2008.09.28 00:21 신고      

      아무리 인간으로서 상상조차 하기 힘든 지옥을 겪었어도, '나', '내 가족'이 그런 경험을 한 게 아니라면 피부로 와닿지 않나봅니다. 해마다 많은 이스라엘 학생들이 수용소를 견학하는데, 그들이 커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정도는 다르지만) 학대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에요.

      그건 그렇고, '주기율표'는 한 번 읽어보세요. 화학자답게 자신의 이야기를 각종 원소에 "매치"시켜 풀어놓았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ㅅ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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