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비젤'에 해당하는 궁시렁 1

  1. 2008.10.11 번역은 제발 표준어로 (7)
엘리 비젤의 "밤"을 번역한 김하락씨는 '바른 번역' 소속 번역가 겸 국어단체연합 국어상담소 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람이, 책 제목은 (친절하게도 자신이 옮긴 책의 제목 그대로, 하지만 사실 그 책은 프랑스어 원문을 영어로 번역한 거지만) "나이트"라고 했을 뿐더러(나이트클럽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개신교도인지, 뒷표지에 "하나님"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올바르게 번역한 원고를 출판사에서 마음대로 바꿔버린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동안 훌륭한 번역가들이 옮긴 책만 읽어서인지, 올바른 한국어가 아닌 이런 어처구니 없는 가당치도 않은 표현이 책 표지에 떡하니 있는 것에 짜증이 나서 읽고 싶은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제3제국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퇴각하는 죽음의 행진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수없이 쏟아지는 '하나님' 때문에 책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정말이지 굴뚝같았다.
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숫자에 님을 붙인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글의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지만, 하나+님이라는 조합은 유일신을 나타내는 상징성이 있고, 어차피 언어는 많은 사람들이 쓰는 쪽으로 계속 바뀌는 거라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기 때문에('하느님'을 사용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사용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 구체적 숫자까지 들먹임) 하나님을 표준어로 하면 좋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부드러운 제안처럼 써 놨지만 사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들이 무조건 옳은 줄 아는 (대다수) 한국 개신교의 천박한 무식함, 후안무치, 오만방자함이 철철 넘쳐흐른다. 일요일엔 교회에 가야 되니까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은 일요일에 봐서는 안 된다고 입법을 제안한 어느 정신 나간 국회의원도 있었지?

옮긴이의 글에 단골로 등장하는 난 열심히 번역했지만 그래도 부족한 점이 있다면 모두 자기 탓이라는 문구가 이 책에도 있다. '나름대로 충실히 번역한다고 했으나 저자와 독자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한다. 차마 글로 옮기기에 부족한 절멸수용소의 처참한 모습을 풀어놓은 이 책을 단 한 단어를 잘못 써서 어느 독자에게 누를 끼쳤으니, 의구심은 없어지지 않겠네. -_-;


모든 대륙에서 인권이 침해받고 있습니다. 누구나 도처에서 벌어지는 불의나 인간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그들의 처지에 아픔을 느낍니다만, 그들이 폭력적 방법에 호소할 때는 슬픔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폭력은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테러리즘은 가장 위험한 답입니다. 그들은 낙담하고 있습니다. 그건 이해합니다. 어떻게든 손을 써야 합니다. 난민들과 그들이 겪는 불행, 아이들과 그들이 겪는 공포, 쫓겨난 사람들과 그들이 겪는 절망. 그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유대 민족과 팔레스타인 민족은 둘 다 자식을 너무 많이 잃었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반목과 유혈 사태는 중지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협력할 것입니다. 그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이스라엘을 믿습니다. 유대 민족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기회를 줍시다. 이스라엘의 지평선에서 증오와 위험이 사라지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스러운 땅과 그 주변 나라에 평화가 올 것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을 기억하신다면 제가 이스라엘 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스라엘이 한 차례 전쟁에서 만에 하나 지기라도 한다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민족은 종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그가 창조한 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엘리 비젤의 1986년 노벨 평화상 수락 연설문의 일부분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하나님'에 넌덜머리가 나있어서 그런지, 놀랍게도 관용과 평화보다 선민의식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게다가 비젤의 그 굳은 믿음은 슬프게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내가 좀 흥분해서 그렇지, '하나님'만 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하지만 난 (프랑스어를 모르니까) 영어로 된 책을 보겠다. ㅡㅡ;



Night
Elie Wiesel (tr. Marion Wiesel)
New York: Farrar, Straus & Giroux,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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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매치어 2008.10.11 02:43 신고      

    농담 삼아서 천주교에서 '개신교와 우리는 다른 신을 믿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저흰 하느님을 믿죠.'하는데... 프랑스 분이라면 하느님을 믿으실 확률이 높겠군요~ ^^
    이런 거 보면 번역은 참... 신경쓸 게 많은 것 같습니다.

    • BlogIcon 궁시렁 2008.10.12 02:08 신고      

      한국어에서만 벌어지는 웃지 못할 촌극이죠...
      한글이 과학적으로 가장 우수하다고는 하지만 언어로서의 한국어는 그렇지 않을 거에요. -_-ㅋ

  2. BlogIcon 한가람 2008.10.12 01:27 신고      

    예수님은 '하나님'이란 단어 같은 건 생각도 안 하셨겠죠.

    • BlogIcon 궁시렁 2008.10.12 02:38 신고      

      헤브라이어는 아예 모음이 없으니, 이런 우스꽝스러운 광경은 상상도 못했을 거에요.

  3. BlogIcon ykwon 2008.10.13 15:18 신고      

    훗. 이거 오해입니다.
    하늘의 옛말에서 '늘'은 사람의 옛말에서 '람'처럼 '아래아' 모음을 씁니다.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세요)
    아래아를 표현할 방법이 없어 A로 표현하면 '하ㄴAㄹ', '사ㄹAㅁ' 이죠.

    '아래아' 모음은 사람,살고기,한글,닭,달리다 처럼 'ㅏ' 모음으로 바뀌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간혹 아들,하늘처럼 'ㅡ' 모음으로 치환되는 경우도 있긴 있습니다.
    하느님은 찾아보면 '하늘+님'으로 옛말은 '하ㄴA님'으로 나옵니다. (A는 아래아)

    제가 보기엔 하나님과 하느님 둘다 '천주'를 번역한 것으로 '하ㄴAㄹ님'->'하ㄴA님'이었는데, 발음적으로 '아래아'가 사라지면서 하날/하늘이 동시에 쓰였던 기간이 있었고 (사전에 하날은 또한 하늘의 사투리라고 나옵니다) 따라서 미처 한글 표기가 정립되기 이전에 번역하는 시기가 언제였느냐에 따라 둘로 나뉜 것이라고 봅니다. (개신교 성경과 카톨릭 성경이 번역 주체가 달라서..)

    강낭콩이 양배추 모양으로 생긴 콩이라고 우기는 것이 우스운 일이듯이 (강낭은 양배추의 다른말)
    어원을 살펴보지 않으면 오해하기 쉽상인 것이 우리말이지요.
    (요새 강낭콩이 '강남(운남)에서 나는 콩'이라는 뜻이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도 생긴 모양이 그래서 '하나(1)'+'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생각해보면 '하날님'이라는 개념이 있는 나라에서 번역자들이 그런 식으로 번역했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개신교에 대한 무한한 반감을 가지신 분들은 어떻게 해석해도 나쁜쪽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과 '하느님'을 두고 시비하는 것은 '아람다왔다'와 '아름다웠다'를 두고 시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ㄴAㄹ'->'하날'로 가는 게 더 일반적인 방향이고 실제로 그렇게 써버린 문헌(개신교 성경)도 있는데, 그 후에 대중적인 표현이 바뀌어 버린 거라고.. 그런데 어쩝니까. 동사나 형용사도 아니고 중요한 고유명사로 쓰이는 표현을 책에서 다 바꿔버릴 수도 없고.

    나중에 '하늘'이 '하널'로 바뀌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래도 카톨릭 성경은 '하느님', 개신교 성경은 '하나님' 그대로입니다.
    '하널님' 혹은 '하너님'으로 바꾸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장담하지요.
    그때쯤 가면 이런 오해가 없어지게 될까요..

    개신교 싫어하시는 건 자유지만 둘다 우리말이었던 하느님/하나님 중 한 쪽을 미워하시는 건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냥 사투리려니.. 생각하십시오.

    • BlogIcon ykwon 2008.10.13 13:57 신고      

      아 사실 이 답글은 위의 답글들에서 보이는 오해 "천주교에서 '개신교와 우리는 다른 신을 믿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저흰 하느님을 믿죠.'" 와 원글에서 보이는 오해 "하나님은 유일신의 의미이다"에 대한 답글입니다.

      원글만 읽고 바로 이 글을 읽으면 이상하게 느껴지겠네요.
      저는 원글에서의 논의에 대해서는, 고유명사대신에 보통명사인 '신'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바입니다.
      연설자가 무슬림이었으면 '알라'라고 번역하는 게 바람직할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고유명사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논란의 소지가 있으니 말이죠.

    • BlogIcon 궁시렁 2008.10.13 16:09 신고      

      아, 오해하셨습니다.
      주소를 기억할 수 없는 그 블로그 주인 및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수많은) 개신교도들이 하나님의 하나를 "the Only"로 알고 있다는 게 문제죠. 사실 원인은 권영희님께서 쓰신 글의 내용처럼 한국어의 표기법이 (다른 언어와 비교해서) 빛의 속도로 계속 바뀌기 때문인데 말이죠.
      개신교도들끼리야 어느 표현을 쓰건 제 알 바 아니지만, 다만 책을 출판할 때는 맞춤법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입니다. (이 '바람'도 20년 뒤에는 '바램'으로 바뀔 수도 있겠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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