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에 해당하는 궁시렁 2

  1. 2008.11.26 마음을 연다면 (2)
  2. 2008.11.20 언어중추가 오염되고 있어! (11)

한순간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는 이 놀랍고 특이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상황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고 어리석음이 이성과 화해하는 이 상황을, 하느님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으며 현대 과학이 누군가의 말처럼 바보에 불과하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이야기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해질까 생각해 보았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가 마음을 연다면, 그전에 그가 했던 모든 이상한 행동들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공격적이거나 무례하거나 불성실한 행돌들까지,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가장 기초적인 상식에도 어긋나는 행동까지, 말하자면 그가 했던 거의 모든 행동이, 설명될 것이다. 그가 마음을 열고 나면 조화가 회복되고, 모든 실수가 무조건 완전히 용서될 것이다. (중략) 호의에서 우러나온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의 생각은 떠오를 때만큼 재빨리 사라져 버렸다. 물을 엎지른 뒤에 울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말은 이미 수천 번도 더 했다, 그런 경우 문제는 물항아리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렸다는 점이다.

주제 사라마구, "도플갱어", pp. 230-231




도플갱어 O Homem Duplicado
주제 사라마구 지음 / 김승욱이 한국어로 옮긴 것을, 마가렛 훌 코스타가 영어로 옮긴 것을 참고로, 궁시렁이 수정함
해냄출판사, 2006


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책 읽는 지누
  1. BlogIcon 띠용 2008.11.26 19:46 신고      

    마음이 열린 사이라면 모든것이 다 용서된다 그 말이군요...-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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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만나려면 묘지로 가는 수밖에 없다. 빌어먹을 인생이라는 년이 원래 그런 것이다. 인생은 항상 우리를 버린다. 이 천박한 표현은 저절로 그의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는 원래 상스러운 말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아주 드물지만 그런 말을 쓰는 경우 그 자신이 어색해서 깜짝 놀라곤 한다. 소리를 내는 기관들, 즉 성대, 구개, 혀, 치아, 입술에 전혀 확신이 깃들여 있지 않기 때문에. 마치 이것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언어를 발음하는 것 같다.

주제 사라마구, "도플갱어", p. 20


내 언어중추도 이렇게 오염되고 있다. 나도 (대략 13년째) 원래 상스러운 말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아주 드물지만 그런 말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경우 내 자신이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하물며 그런 상스러운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경우는 전혀 없다. 여기서 '전혀'라는 부사는 사전에 나오는 뜻 그대로 쓰인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상스러운 말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과거와 비교해) 상당히 늘어나서, 겉으로 티가 나지 않지만 굉장히 당혹스럽다. 예전에는 속으로 생각하다가 상스러운 말이 나오면, 물론 이런 일은 정말 드물지만, 어쨌건 그런 말이 튀어나오면, 어이쿠, 이런 되먹지 못한 더러운 말이 떠오르다니, 하면서 마치 여러 사람 앞에서 그 말을 내뱉기라도 한 것 마냥 마구 부끄러워했는데, 근래에는 뻔뻔스럽게도 능글맞게 스리슬쩍 그런 말이 떠오르고, 대뇌피질이 화끈거리며 되먹지 못한 어휘 선택을 자책하기는 커녕, 그저 언어중추가 오염되고 있어, 라는 글이나 끄적이지 뭐, 어떡하나, 이런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물론 대뇌피질에 어깨가 있어서 자신의 어깨를 으쓱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실제 내 어깨가 으쓱하도록 화학신호를 보낸다는 말은 아니지만, 어쨌건 아이가 자라면서 세상의 때를 묻어 더러워지는 것처럼 내 언어중추도 그렇게 오염되고 있다. OTL



도플갱어 O homem duplicado
주제 사라마구 지음 / 김승욱 옮김
해냄출판사, 2006






+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어디까지가 "상스러운" 말인가요?
- "젠장"을 넘어서면 상스러운 말로 분류합니다.
도플갱어, 반듯한 젊은이, 주제 사라마구, 책 읽는 지누
  1. BlogIcon 띠용 2008.11.20 19:52 신고      

    상대가 들어서 짜증나는 말이 그런 말이겠죠 뭐.ㅎㅎ

    • BlogIcon 궁시렁 2008.11.20 20:30 신고      

      대다수 남성과 상당수 여성이 평소에 즐겨쓰는 C-8이나 G-RARL 같은 어휘를 포함합니다. ㅋㅋㅋ

  2. BlogIcon 쿠나 2008.11.21 23:08 신고      

    뭐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느는 건 자기방위를 위한 상욕밖엔 안느는것 같아요 -_-;;. 남중의 험악한 기운에 눌려 살아서 그런가.

    • BlogIcon 궁시렁 2008.11.22 14:59 신고      

      이런 험난한 시대에 여중이라고 별반 다를까요? (안 다녀봐서 모르겠지만 ㅋ) 어차피 한쿡에서 초딩만큼 위험한 존재도 드무니까... -_-;

  3. BlogIcon 웹눈 2008.11.22 10:22 신고      

    하긴 요즘 욕할일이 많이 늘어나긴 했어요. 머리가 커가면서 욕할일도 많아지지만 사실은 예전보다 지금 세상이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을거라는..

    • BlogIcon 궁시렁 2008.11.22 15:00 신고      

      내부 통제 끈이 풀리려고 하니 걱정입니다. ㅠㅠ

  4. BlogIcon 세르엘 2008.11.22 14:36 신고      

    상스러운 말...이라면 욕 비슷한 걸까요.
    전라도로 내려오시면 그냥 말할 때도 나도 모르게 섞이는 경우가 있어서... ㄱ-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다만 인터넷에서 욕을 해본 경험은 거의 없네요. 왠만해선 논리적인 이성을 놓지 않으려고 최대한 최대한 노력해요. 정말 미칠듯이 화가 나면 그 자리를 떠나버리는 비겁한 스타일이라 -_-<<

    • BlogIcon 궁시렁 2008.11.22 15:02 신고      

      상스러운 말(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욕설보다 광범위한 개념)은 성별과 지역을 가리지 않습니다.
      확실히 글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때는 조금 더 순화되겠죠? 키보드에서 한 번 더 걸러질테니.

  5. BlogIcon 세르엘 2008.11.22 15:29 신고      

    역시 핑계에 불과한 거였어요 -_-a

  6. 포로리 2010.01.24 01:29 신고      

    울 집에서는 욕을 쓰면 무지하게 혼나서 동생한데 '나쁜 아이야' 라고만 해도 '엄마 누나가 나보고 욕했어~'라고 이르곤했었지요;;; 그러다 보니 청소년기에 억눌렸던 자아가 저를 '대안욕'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는가봅니다 용산역을 걷다가 '용산 시발' 이라고 써있는걸 보고 혼자 막 좋아하고 그래요 ㅋㅋㅋ

    • BlogIcon 궁시렁 2010.01.24 01:38 신고      

      맙소사, 나쁜놈도 아니고 나쁜 아이라고만 했는데, 게다가 진짜 동생분이 나쁜 아이라는 칭호에 기막히게 걸맞는 나쁜 행동을 자의반타의반으로 했을지도 모르는데, 물론 대다수 상황은 별 것 아닌 일 가지고 부적절한 형용사를 아무렇게나 같다 붙이기 일쑤지만, 어쨌건 앞으로 처음 출발하는 역이라는 뜻을 가진 어느 특정 단어를 볼 때마다 키득거리면 그건 다 포로리님 탓이에요. ㅋ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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