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그제나 어제 보냈어야 마땅한 메일을 오늘 저녁 9시에나 그것도 코웃음이 펑펑 나올 정도로 영양가 없는 상태로 보내고 집에 가려다 화장실을 쓰려고 중도로 발길을 옮겼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35% 밝기에 불과한 핸펀 액정의 학생증 QR코드를 출입기가 인식하지 못해서 밝기를 100%로 끌어 올린 다음에야 입장.
그리고 중도 리모델링 이후 처음 써 보는 화장실에 들어가려는데... 응? 난생 처음 보는 자동문 센서가 달려 있네? 손이 그려져 있어서 손을 대면 열리는 건가 하고 손을 갖다 댔는데, 문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뭐지? 하면서 두꺼운 반투명 유리 (아무리 봐도 자동)문을 손으로 잡고 당기는 순간, 뒤에서 다른 사람이 접근해와 왜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문을 안 열지 내가 열어야겠네 하며 현대문명의 이기에 익숙하지 않아 양변기에서 밥 지을 물을 뜨는 원시인 취급을 받을 것 같다는 어처구니 없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황급히 이 볼썽사나운 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으로 재빨리 다시 손이 그려진 센서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이 모든 게 대략 0.7초만에 일어났다.

다행히 문이 스르륵 열렸다. (아직 '제 옆에 손이 그려진 센서에 손가락을 갖다대면 제가 행복한 마음으로 열린답니다' 하고 말하는 문이 발명되지 않아 다행이다;;;)

어쩐지 약간 부끄러워서 휘리릭 가장 안 쪽에 있는 변기 앞에 서(쓸데없는 정황 묘사 생략)서 이 (나 혼자) 창피한 상황을 궁시렁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손을 씻으려고 손을 수도꼭지 밑에 갖다댔는데 물이 안 나오길래 손잡이를 올려서 물을 틀고 문은 자동문인데 수도꼭지는 왜 자동이 아닐까 웃기네 하고 0.15초 동안 생각한 다음 화장실에 들어올 때와 똑같이 손이 그려진 센서에 손가락을 대고 이번에는 한 번에 성공적으로 문을 연 뒤 화장실에서 나와서 중도에 널린 아무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학번과 비밀번호를 치고 컴퓨터를 쓰려다, 공용컴퓨터를 쓰려면 자리를 먼저 잡아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당연한 진리를 어처구니없이 망각한 것을 깨닫고 다시 0.8초 동안 창피해한 뒤 자리를 잡고 지금 궁시렁을 쓰고 있다.


이 모든 게 2012년에는 트윗질 한 방이면 끝날 일이지만, 어쩐지 별 것도 아닌 시시껄렁한 일을 길게 늘어뜰이는 예전 습성(?)을 되풀이하고 싶었다. 물론 궁시렁을 다 써놓고 제목을 뭐라고 하지... 하고 고민하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트위터나 페북은 제목이 없는 게 참 쓰기 편하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