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악한 장바닥을 떠돌며 눈치껏 살아온 덕분에 약장수는 지역의 예술가들과 어울리는 요령을 한 가지 터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가능한 한 말을 적게 하는 거였다. 그것은 무지를 숨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식과 예민한 안목 그리고 높은 인격을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으며,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 연출과 적당히 예의 바른 미소,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짧고 인상적인 멘트 하나면, 물론 그것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약장수는 한 카페에서 주워들은 얘기를 다른 카페에서 써먹는 식으로 대화에 끼어들었고, 그 효과는 놀랄 만큼 좋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멘트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 형식주의는 모방론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죠.
- 보르헤스는 프랑스 영화에 대해 지리함에 대한 열광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할리우드 영화는 무엇에 대한 열광일까요?
- 요즘 소설은 점점 더 미니멀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진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런 식의 짧은 말 한 마디면 사람들은 대개 그의 통찰력에 놀라며 의심 없이 그를 자신들과 같은 부족으로 인정해 주었다. 혹 누군가가 그의 언급에 대해 좀 더 깊이 대화를 나누려고 하면 그는 신중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물러서곤 했다.
- 글쎄요. 그냥 제 짧은 소견이 그렇다는 것 뿐이죠.
그리곤, 커피를 한 모금 찔끔 마시며 다음과 같은 말로 화제를 돌렸다.
- 그런데 이번 문학상은 심사위원들이 너무 보수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닐까요? 물론, 그 작가가 훌륭하다는 건 나도 인정하지만.
그 정도면 언제나 충분했다. 그가 한마디 던져 놓으면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떠들어 주었기 때문에 그는 적당히 미소를 머금고 앉아 듣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은 토론의 법칙이었다. 지식인이라는 부류는 대개 음험한 속셈을 감추고 있어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것은 한편으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아무하고도 적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대화는 언제나 수박 겉핥기 식일 수밖에 없었으며 약장수는 그 점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p. 342-343


고래
천명관 지음
문학동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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