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흠- 내가 얘기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애초에 나는 KLM 홍보원으로서 좋은 말 쓸 계획 따윈 애시당초 없었다. 상품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널리 알리는 것이 홍보의 진정한 의미. (아닌가...? 마케팅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은 잠시 접어두자. ㅎㅎㅎ) 게다가 웹사이트가 특이해서 뽑았다니 나로서는 더욱 떳떳해질 뿐. ㅋㄷ 무엇인가에 대해 궁시렁댄다는 것은 그 대상이 뭔가 좋지 않은 점이 있기 때문 아닌가! (여기서 그 단점과 (혹시 없을지도 모르지만) 장점의 상대적인 크기는 단점의 존재 그 자체보다 가중치가 떨어진다)

또 애초에 나는 기내식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워낙 비행기에 타서 기내식 사진을 찍고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기내식은 그냥 기내식일 뿐... 기내식이 맛있다고 특정 항공사를 선호...하는 사람이 물론 있을 수도 있지만, 내 기준에서 기내식은 어디까지나 워싱턴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중요도보다도 훨씬 아웃오브안중이었다. 뭐, 지금까지는 그랬다.

인천에서 암스테르담(및 유럽의 어느 도시건)까지 가는데는 10시간 이상 걸린다. 그래서 식사는 두 번 나온다. 출발한지 두 시간 정도 지나면 밥이 돌기 시작하는데, 보통 메뉴는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으며, 또한 보통 뒤쪽에 앉은 승객은 앞에서 한 메뉴가 동이 나면 꼼짝없이 나머지 메뉴를 먹기 실어도 울며 겨자먹기로 먹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껏(그래봤자 왕복 4 차례) 특정 메뉴가 떨어져서 내가 못 먹는 걸 강제로 할당당한 경우는 없었다. 뭐, 지금까지는 그랬다.

비행기를 타기 바로 전에 허겁지겁 빵 하나를 먹어서 그닥 배가 고프진 않았는데, 일단 승무원이 밥을 주겠다며 접근했는데- beef or fish? 뭐 이런 멘트를 날리는 게 아니라 그냥 무조건 닥치고 이것 먹어! 하는 식으로 식판을 들이 밀었다. KLM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고품격 정통 한식 메뉴로 구성된 기내식을 제공해 승객들에게서 아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용수산의 비빔밥이었다. 내 자리가 맨 뒤 끝도 아니고 중간쯤이었는데, 승객들에게서 아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KLM이 보도자료로 밝힌 것과는 달리 얼마나 많은 승객이 비빔밥을 철저하게 외면했는지 벌써부터 다른 메뉴는 얼굴도 보지 못하고 꼼짝없이 앉아서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비빔밥따위를 비행기에서 먹고 싶은 생각은 만 미터 상공의 산소 농도만큼이나 없었지만 다른 메뉴가 없으니 할 수 없이 받긴 했는데... 내 식판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참기름이 덕지덕지 묻어있어서 하마터면 옷에 죄다 떨어질 뻔했다. 비빔밥에 왜 빵이 같이 딸려 나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호흡을 가다듬고 버터를 발라 먹은 다음, 비행기가 추락해라 보이지 않는 한숨을 내쉬며 밥 뚜껑을 여니, (당연한 이유로) 갈은 고기가 떡하니 얹어져있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용케 고기와 나머지 부분을 분리하고 먹는 게 생존의 지름길이지만, 어째 이 비빔밥에 얹혀진 고기는 밥알과 수소결합이라도 한 것처럼 찰떡궁합으로 들러붙어있어 제한된 공간과 도구로는 도저히 고기만 분리해낼 수 없었다. 이미 식욕이나 입맛따위는 타클라마칸 사막 너머로 사라졌지만 그래도 일단 뚜껑을 열었으니 맛이라도 보는 게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서 맨 오른쪽 버섯이 있는 부분만 조금 떠먹어봤지만, 역시나 식판을 통째로 뒤집어 엎고 엔진 속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게 만드는 엄청난 맛에 뇌가 튀겨질 것 같았다. orz 도무지 한 숟가락도 더 입 안으로 털어넣을 수가 없어서 곁다리 반찬으로 나온 버섯 샐러드 비스무리한 걸 억지로 다 먹었는데, 이딴 고급 한식을 기침을 참아가며 먹어야 하다니 참 서러운 느낌이 들었다. -_-ㅋ 후식이 아니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무지개떡처럼 생긴 케이크도 달기만 하고 전혀 쓸모 없었지만 이 식판에서는 그나마 제일 나은 음식. -ㅂ- 혹시나 해서 옆에 앉은 아저씨 아줌마가 만약 빵을 안 먹으면 대략 불쌍하고 굶주린 눈망울로 빵이라도 얻어먹으려고 했으나 내가 미처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빵에 부지런히 버터를 찍어발라 모두 해치워버리시더군. orz
산더미처럼 쌓일 종이와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하러 승무원이 돌아다니자 89% 이상 무게를 보존한 식판을 건네면서 싸늘한 시선으로 이렇게 끔찍하고 실망스러운 식사는 본 적이 없으니 아까 먹은 빵이라도 하나 더 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컵라면을 받아먹을 수 있을 뿐이었다. 물론 나도 빵이 남아있을 거란 기대 따위는 애초에 하지 않았고, 나중에 컵라면을 간식으로 줄 것도 알고 있었다. ㅋㄷ

먹을 게 없어서... 난 스파클링 레몬 네스티(엥? 이런 제품이 있었음둥?)만 계속 먹었다.

이마저도 면만 먹고 국물까지 다 안 마시니까 옆에 앉은 아저씨가 라면은 국물까지 다 마시는 거라며 조언을 했고(아, 네.), 간식도 앞에서부터 나눠주는 관계로 이 컵라면(삼양라면)도 중간쯤 오자 다시 죄다 떨어져 타이 컵라면을 먹던지 아예 안 먹던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헤야 하는 씁슬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그러다 비지니스 클래스에서 남은 물량이 이코노미 뒷자석에 다시 돌았음 ㅋㅋㅋ)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OTL
두번째 식사 역시 물어보지도 않고 휙휙 나눠주길래 물어봤더니 이 메뉴 하나 공통이라고 한다. -ㅅ- 어디 뭔가... 하고 열어보니...
고기가 섞여있는 볶음밥... OTL
아놔!!! 도대체 뭐야!!! 한국에 남아도는 쌀을 KLM이 처리해 주는 거야? -_- 환경을 생각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 대신 종이로 만든 박스(이산화탄소만 환경이고 쓰레기는 환경 아닌가? -ㅂ-)를 열었다가 역시 마찬가지로 예의상 한 숟가락만 끝부분을 잠깐 떠먹어본 뒤 오만 정나미가 다 떨어지는 징그러운 기내식에 넌덜머리를 치면서 식용유가 좔좔 흐르는 박스를 닫고 같이 나온 비스킷과 네스티로 다시 끼니를 때웠다. ㅠㅠ 이게 뭐야... 직원용 공짜표로 탔다고 괄시하는 것도 아니고... orz 한 번은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면서 넘어가려고 했지만 이단 콤보로 고기가 든 비빔밥과 고기가 든 볶음밥 시간차 공격을 받으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홍보원이고 뭐고 남들이랑 똑같이 기내식이 어쩌구 하는 궁시렁 따윈 쓰지 않겠다는 원대한 포부(응?)도 버리고 이 끔찍한 기내식의 처참한 모습을 묘사하고야 말겠다는 복수심에 홍채가 활활 타올랐다.

- 사진은요?
- 지금 밥상을 뒤엎게 생겼는데 카메라가 손에 쥐어집니까? 아놔.

어쩌면 KLM은 자사 홍보와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라면 나를 KLM이 아니라 루프트한자 비행기에 태워 보냈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ㅋㅋㅋ  10명 중 하나는 경쟁사를 깍아 내리는 더티 노이즈 추잡 비공식 마케팅 카드로 써먹을 수도 있지 뭐. ㅋ_ㅋ (그런데 어쩌지? 3년 반 전 루프트한자를 타고 갈 때는 이렇게 기내식가지고 분노와 기아에 허덕이며 궁시렁댈 일 자체가 없었는데? 폴락락!)


+ 주의사항 : 본 궁시렁은 KLM 홍보원의 자격으로 쓴 것이 아님을 이제서야 의도적으로 뒤늦게 밝히며 궁시렁의 음식 취향은 평범한 한국인의 입맛과는 츠키야마와 국민 사이의 거리 만큼이나 머-얼리 떨어져 있음을 알릴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ㅎ_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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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502is 2009.06.23 10:47 신고      

    음.. 식용유를 방부제 대용이라도 쓰는걸까요 -_-;;
    얼마전에 기내식 칼로리와 나트륨 함량이 꽤 높다는 기사를 봤덧것 같은데..;

    • BlogIcon 궁시렁 2009.06.25 09:07 신고      

      차갑게 식은 볶음밥이 과연 기내식으로 적당한지 의문입니다. ㅎㅎ

  2. BlogIcon mahabanya 2009.06.23 10:54 신고      

    지금까지 기내식으로 고생한 적은 필리핀 갈 때 빼고는 없었는데;;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그리고 일본 항공사(잘과 자스)와 에어프랑스의 기내식은 끼니를 때우기에는 큰 불만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 BlogIcon 궁시렁 2009.06.25 09:10 신고      

      저도 8년 전 KLM을 타고 갈 때는 기내식에 큰 불만 없었답니다. ㅎ_ㅎ

  3. 2009.06.23 12:00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궁시렁 2009.06.25 22:56 신고      

      무슨 점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거리는지 메일로라도 사알짝- ㅎㅎㅎ
      전 그런 거 없습니닷. 심플하게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밀어 붙이는 것이 결국에는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믿어요. (정말?)

  4. BlogIcon mooo 2009.06.23 15:29 신고      

    인증샷이 없으니 무효!
    그나저나 경쟁사의 더티 노이즈 마케팅은 아주 좋은(?) 아이디어인 걸요!!

    • BlogIcon 궁시렁 2009.06.25 17:29 신고      

      기내식에 대해서 궁시렁거렸지만 기내식 사진만은 찍지 않겠다는 신념은 지켰답니다. ㄲㄲㄲ
      자- klm은 어여 제게 루프트한자 표를 넘겨 주삼! ㅎㅎㅎ

  5. BlogIcon Noel 2009.06.23 16:26 신고      

    왜 고기를 밥하고 분리하나요?
    같이 넣어서 쓱싹쓱싹 비벼서.. 아니 도대체 어땠길래.. 궁금해집니다. ~_~;

    • BlogIcon 궁시렁 2009.06.25 17:30 신고      

      http://www.ginu.kr/ginu.htm 을 참조하시면 궁금증이 쵸-큼 풀릴 수도... ㅎㅎㅎ

  6. BlogIcon Krang 2009.06.23 20:04 신고      

    지누님표 비유법의 도움으로,
    안가봐도 가본듯, 안먹어봤어도 먹어본 듯, 합니다. :)ㅎㅎ
    외국인의 입맛에 적절하게 만든 비빔밥인듯 -ㅅ-;;;

    • BlogIcon 궁시렁 2009.06.25 17:33 신고      

      하지만 정작 외쿡인들은 철저하게 외면해 주시고... ㅎㅎㅎ

  7. BlogIcon 띠용 2009.06.23 20:05 신고      

    자동 다이어트가 되겠네요.ㄷㄷㄷ

    • BlogIcon 궁시렁 2009.06.25 17:33 신고      

      대신 빈에 도착하자마자 1kg 이상 쪘어요. ㅋㅋㅋ

  8. 헤헤 2009.06.23 21:33 신고      

    사람이 먹을 걸 못먹으면 그 어느 때보다도 분노심에 철철 불타게 되지 ㅋ
    그냥 너의 분노가 구절구절 그 기내식의 식용유와 갈은 고기마냥
    들러붙어있구나. 고생 많았다.ㅎㅎ

    • BlogIcon 궁시렁 2009.06.25 17:38 신고      

      차갑게 식은 해물 끈적끈적 올리브유 스파게티였다면 트위터나 미투에 에잇 맛 없어- 하고 말았을텐데 ㅋㅋㅋ

  9. BlogIcon 감은빛 2009.06.24 00:28 신고      

    정말 오랫만에 들렀는데, 살벌한 글을 읽게 되었네요.
    저는 외국 여행을 별로 가보질 못해서리.......
    몽골과 사이판을 가봤는데요.
    몽골은 관광이 아니라 일하러 갔던 거라 기내식이니 뭐니 이런건 하나도 기억이 안나고,
    사이판은 관광하러 가긴 했는데, 아이한테 신경쓰느라 별로 기억나는게 없네요.

    그나저나 KLM 이 어느 항공사인가요?(왠지 물으면 안되는 걸 물은듯한 기분이 드네요! ㅋㅋ)

    • BlogIcon 궁시렁 2009.06.25 17:36 신고      

      http://grouch.ginu.kr/422 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KLM 네덜란드 항공을 모르는 사람이 생각 외로 너무나 많아서 블로그 홍보원도 뽑고 하는 거랍니다. ㅎㅎㅎ

  10. BlogIcon 박준규 2009.06.24 11:51 신고      

    이봐... 네 전화번호를 나한테 문자로 쏴다오.

    핸드폰이 세탁기에 다녀왔더니 모든 걸 잊었어.............ㅠㅠ

    • BlogIcon 궁시렁 2009.06.24 17:58 신고      

      ㅋㅋㅋ 그러게 무슨 핸펀을 옷에 넣고 다니나-
      그래서 새로 샀어?

  11. BlogIcon 회색웃음 2009.06.28 09:08 신고      

    평소때 주로 드시는 음식이 어떤건가요?
    괴기 빼고 채식은 만사 OK인쥐..?

    • BlogIcon 궁시렁 2009.07.01 20:36 신고      

      제 식성이 꽤나 독특해서뤼....;;;; ㅋㅋㅋ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답니다. 쿨럭;;;

  12. BlogIcon 회색코끼리 2009.07.05 17:44 신고      

    저는 기내식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먹는데..
    궁시렁님은 기내에서 다이어트를!! 부러워요.

    • BlogIcon 궁시렁 2009.07.07 04:21 신고      

      네덜란드 승무원이(가) 웃으며 말합니다.
      "이봐요 승객씨. 여기가 당신이(가) 먹고 싶은 대로 주문하면 그대로 대령하는 식당인 줄 아쇼?"

  13. BlogIcon 윤신형 2009.07.18 17:31 신고      

    그렇군요. 형이 고기를 못 먹네요.
    그러고 보니, 정말 채식주의자가 있을 수도 있었을텐데.
    KLM이 그런 배려가 없었네요.-

    • BlogIcon 궁시렁 2009.07.19 19:56 신고      

      흠- 혹시 탑승 전에 내가 이러이러한 이유로 식성이 까탈스러우니 식사 배급(?)때 고려해 주시오- 라고 미리 요청을 넣었다면 약간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네;;;

  14. BlogIcon 미나 2009.07.19 06:43 신고      

    아~ 이런..! 에러가 많으셨네요.ㅠㅠ
    저는 비행기 탔을 때 너무 배고파서 디게 잘 먹었는데여.ㅋㅋ
    음식에 기름은 쫌 많았던거 같아요.ㅋㅋㅋ

    • BlogIcon 궁시렁 2009.07.23 12:00 신고      

      제가 좀... 까탈스러워요.
      딱 보기에 그런 느낌이 충만해 보이지 않던가요? 푸핫-

  15. BlogIcon 강자이너 2009.07.23 13:24 신고      

    ㅋㅋㅋ저처럼 그냥 죽을만치 배고픈 상태에서 타셨더라면 달라졌을지도?ㅋ;;

    • BlogIcon 궁시렁 2009.07.23 14:13 신고      

      내가 못 먹는 건 못 먹는 참으로 까탈스런 놈인지라 ㅡㅡㅋ
      꼬르륵꼬르륵 소리나도 툴툴대면서 빵을 주시오- 이러고 있었을듯 ㅋ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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