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지크족, 너는 파쉬툰족, 저 남자는 하자라족, 저 여자는 우즈베크족, 이런 것들이 넌센스지. 우리는 모두 아프간이야. 그것만이 중요한 거야. 하지만 한 집단이 나머지 집단을 오랫동안 지배하게 되면 문제가 생겨. 모욕감도 생기고 적대감도 생기고 말이다. 늘 그랬단다.
p. 177
그렇다고 미국에서 신경을 쓴다는 말은 아니야. 파쉬툰족, 하자라족, 타지크족, 우즈베크족이 서로를 죽이든 말든 그들이 무슨 상관이겠어? 누가 누군지 가려낼 수 있는 미국인이 얼마나 될까? 그들로부터 도움을 바라면 안 되지. 이제 소련이 무너졌으니 우린 그들에게 소용이 없어. 끝장이 난 거야.
p. 285
"오늘은 어떤 사람이 형을 죽인 사람의 목을 가르는 걸 봤지."
"그들은 야만인이에요."
"그렇게 생각해? 뭐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이야? 소련군은 백만 명을 죽였다. 너는 무자히딘이 지난 3년 동안 카불에서만 몇 명을 죽였는지 알고 있냐? 오십만 명이야, 오십만 명! 거기 대면 도둑 몇 놈의 손을 잘라내는 게 그렇게 지나친 거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코란에 그렇게 쓰여 있어. 그리고 말이야, 누가 아지자를 죽인다면 너는 복수하고 싶지 않겠냐? 난 요점을 얘기하는 거다."
"당신도 그들과 똑같아요. 혐오스러워."
"말 한 번 거창하구나. 난 늘 그게 싫었어. 어렸을 때도 그랬고 그 절름발이하고 돌아다닐 때도 그랬고, 너는 책을 갖고 다니고 시를 외우면서 네가 아주 영리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래, 너의 영리함이 지금은 무슨 소용이 있냐? 널 길바닥에 나앉지 않도록 해 주는 게 너의 영리함이냐, 아니면 나냐? 내가 혐오스러워? 이 도시에 사는 여자들 절반은 나 같은 남편을 만나려고 죽기 살기로 덤빌 거다. 죽기 살기로 말이야. 너, 거창한 말이 좋아? 내가 너한테 하나 말해주지. 균형이다, 라일라. 바로 그게 내가 지금 여기서 하는 일이야.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해라."
그날 밤 내내 라일라의 배를 꼬이게 만든 건 라시드의 말이 마지막 한 마디까지 구구절절 맞다는 사실이었다.
pp. 381-383
탈레반이 우리나라 교인들을 납치하면서 온 나라가 들썩들썩했을 때, 나는 이 소설을 중간쯤 번역한 상태였다. 그 납치 사건은 이슬람 문화와 종교를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그리고 다른 종교와 민족에 대해서 조금만 겸손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었다. 다른 문화에 대한 몰이해, 타자에 대한 몰이해는 물리적 폭력과 다를 바 없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인식론적 폭력이라고 나는 배웠고 또 그렇게 가르쳤다. 다른 문화와 민족, 종교에 언제나 겸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서 얘기해 주는 좋은 교과서였다.
p. 572, 옮긴이의 말



천 개의 찬란한 태양 A Thousand Splendid Suns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 왕은철 옮김
현대문학, 2007